항목 ID | GC02401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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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山集 |
영어음역 | Samsanjip |
영어의미역 | Samsanjip Anthology |
이칭/별칭 | 『삼산선생문집(三山先生文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성격 | 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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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류정원(柳正源, 1703~1761)|류종문(柳宗文)|류치묵(柳致默)|류병문(柳炳文)|류휘문(柳徽文)|류기진(柳箕鎭)|류형진(柳衡鎭)|류댁흠(柳宅欽) |
저자 | 류정원(柳正源, 1703~1761) |
간행자 | 류병문(柳炳文)|류휘문(柳徽文)|류형진(柳衡鎭) |
간행연도/일시 | 1863년 |
권수 | 8권 |
책수 | 4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가로 | 16.6㎝ |
세로 | 20.6㎝ |
표제 | 三山先生文集 |
소장처 | 안동대학교 도서관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88[경동로 1375] |
[정의]
1863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류정원의 시문집.
[편찬/발간경위]
류병문(柳炳文)이 지은 류종문(柳宗文)의 제문에, 문고(文稿)의 일을 마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고 한 것에서 이전부터 삼산(三山) 류정원(柳正源, 1703~1761)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증손 류치묵(柳致默)이 주관하여 중본(重本)을 편차하고 종숙인 소은(素隱) 류병문(柳炳文)과 호고와(好古窩) 류휘문(柳徽文)의 교정을 거쳤으니, 『호고와집(好古窩集)』 연보에는 1820년 삼산정(三山亭)에 머무르며 왕고(王考)의 문집을 교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때도 바로 간행되지는 못하고 1863년에 와서야 현손 류기진(柳箕鎭), 류형진(柳衡鎭), 류댁흠(柳宅欽)이 참여하여 원집 6권 3책, 부록 2권 1책 합 8권 4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형태]
8권 4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삼산선생문집(三山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1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6.6㎝, 세로 20.6㎝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서문은 없고, 권말에 류형진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70수, 소(疏) 19편, 권2에 강의(講義) 2편, 권3·4에 서(書) 66편, 권5에 잡저 8편, 권6에 서(序) 2편, 기(記) 2편, 지발(識跋) 3편, 전장(箋狀) 5편, 설(說) 3편, 제문 10편, 묘지 4편, 권7·8은 부록으로 연보·만사·제문·행장·묘갈명·묘지명 등이 실려 있다. 시에는 금강산과 청량산(淸凉山) 등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지은 것, 류경원(柳景源)·조계온(趙季溫)·이민적(李敏迪)·권정웅(權正雄)·이충국(李忠國) 등의 시에 차운(次韻)한 것 등이 있다. 소는 모두 사직하는 내용이다.
강의는 1754년(영조 30) 10월의 경연강의(經筵講義)와 서연강의(書筵講義)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書)는 1755년 당시 관찰사로 있던 한광조(韓光肇)에게 보낸 것으로, 자염(煮鹽)과 환곡(還穀)의 중요성 및 그 문제점에 대해 논한 것, 이경미(李敬美)와 재종제(再從弟) 류선장(柳善長)의 학문 및 이기론(理氣論)에 대한 물음에 답해 보낸 것, 친척인 류홍원(柳弘源)에게 보낸 것으로 기형(璣衡)·혼천의(渾天儀)에 대해 설명한 것 등이 있다.
잡저에는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인 「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 조령산성(鳥嶺山城)에 진(鎭)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한 여러 의견을 자세히 설명한 「조령산성설진의(鳥嶺山城設鎭議)」가 있다. 「정전설(井田說)」은 정전제에 대한 논의를 소개한 글이다. 「안성유씨우선설변(安城劉氏右旋說辨)」은 중국 및 조선 학자들 사이의 전통적인 견해인 좌선설(左旋說)의 내력을 소개하고, 자신은 안성유씨(安城劉氏)가 주장한 우선설(右旋說)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천체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