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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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陶笑虎溪孟落龍山巖刻書 |
영어음역 | Dosohogyemaengnagyongsan Amgakseo |
영어의미역 | Dosohogyemaengrakyongsan Inscribed on a Roc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규복 |
성격 | 암각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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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조선시대(신축년 가을) |
관련인물 | 만촌(晩村)|택봉(宅鳳) |
높이 | 76㎝ |
길이 | 76㎝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개설]
‘도소호계(陶笑虎溪)’는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진나라 혜원법사(惠遠法師)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살면서 호계(虎溪)를 건너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혜원법사는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을 배웅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호계를 건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호랑이 울음소리에 혜원법사는 스스로 맹세를 어긴 것을 깨달았으며, 세 사람이 함께 웃었다고 한다.
‘맹락용산(孟落龍山)’은 맹가낙모(孟嘉落帽)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나라 환온(桓溫)이 용산(龍山)에서 잔치를 열었다. 잔치에 참가한 사람 중 맹가(孟嘉)란 인물이 있었는데 맹가는 자신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간 것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이를 보고 환온이 손성(孫盛)에게 맹가를 놀리는 시를 짓게 하였는데, 이에 화답하는 시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한다.
[건립경위]
도소호계맹락용산은 조선시대 신축년(辛丑年) 가을 택봉(宅鳳)이 아버지 만촌(晩村)이 쓴 글씨를 돌에 새겼다.
[위치]
도소호계맹락용산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80호로 지정된 만운동 모선루(晩雲洞慕先樓)에서 남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 도로 오른쪽에 있다.
[형태]
도소호계맹락용산은 입방체 모양 자연석의 한쪽 측면을 가로 76㎝, 세로 76㎝ 정도로 매끈하게 다듬은 후 세로 방향으로 5줄의 글씨를 새긴 것이다. 글씨는 2줄로 된 ‘도소호계맹락용산(陶笑虎溪孟落龍山)’은 크고, 3줄로 된 ‘신축년중추만촌옹제불초자택봉차일석이근각(辛丑年中秋晩村翁題不肖子宅鳳借一石而謹刻)’은 작은데 크기는 큰 글씨가 14㎝, 작은 글씨가 6㎝ 정도이다.
[의의와 평가]
도소호계맹락용산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제자 이정(李楨)에게 이별을 슬퍼하며 써 주었다는 당시(唐詩) 구절을 새긴 석간대전별시(石澗臺餞別詩)와 함께 경상북도 안동을 대표하는 시문(詩文)과 관련된 암각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