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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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亭下洞高麗古墳 |
영어음역 | Jeonghari Goryeogobun |
영어의미역 | Goryeo Ancient Tomb in Jeongha-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 산77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임세권 |
성격 | 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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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널무덤 |
건립시기/연도 | 12세기 |
높이 | 130㎝(II구역 9호분)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 산77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에 있는 고려시대 고분.
[위치]
낙동강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지점 남쪽 야산 지대에 있다. 유적이 있는 야산 북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강변에는 귀래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능선은 최고 해발 156m, 강변 평지는 해발 약 90m로 표고 차이는 66m이다. 고려 민묘가 있는 능선 아래로 성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한국토지공사에서 시행하는 안동 정상동 택지 개발에 따른 유적 조사 일환으로 1995년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998년 시굴 조사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크게 I구역과 II구역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지표 조사에서 전폐사지 1개소, 민무늬 토기 출토지 2개소, 고분군 3개소, 고려와 조선 분묘군 11개소를 확인하였다. 발굴 조사에서는 선사시대 유물이 수습된 2개소와 폐사지로 전하는 곳에서 아무런 유구도 발견하지 못하였고 지표 조사 때 드러나지 않았던 기와 가마를 다량 발견하였다.
삼국시대 고분과 고려 및 조선시대 분묘들도 발굴을 실시하였다. 이 중 고려시대 분묘는 I구역 4호분, II구역 9호분·18호분·20호분·21호분·23호분 등으로 모두 구덩이에 나무널[목관]을 사용하였다. 유물은 청자, 머리꽂이·허리띠 장식 등 청동제 장신구, 도제 병, 토제 매병, 수저 등이 출토되었다.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된 곳은 II구역 23호분이다.
[형태]
봉토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1m가량이다. 봉토 아래는 일부 둘레돌이 있거나 봉토 배수로가 남아 있다. 배수로의 경우 구덩이의 길이와 평행하고 구덩이 양쪽에 직선 형태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봉토는 장방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형태는 안동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려시대 고분들의 봉토 형태와 일치한다. 무덤구덩이는 생토층을 파고 그 안에 나무널을 묻었는데 나무널 외부와 구덩이의 토벽 사이에 동물 뼈가 부장된 분묘도 있다.
I구역 4호분은 구덤구덩이 평면이 정방형에 가깝고 장축은 남북 방향이다. 무덤구덩이 길이 130㎝, 폭 120㎝, 깊이 25㎝로 깊이는 표토가 많이 깎여 나가 밑 부분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II구역 9호분은 봉분 길이 500㎝, 폭 450㎝, 높이 130㎝ 정도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훨씬 높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4~5차례 판축을 하였다. 무덤구덩이는 길이 260㎝, 폭 80㎝, 높이 35㎝ 정도이다. 내부의 나무널은 부식되어 없어졌으나 관못의 위치로 미루어 길이 190㎝, 폭 55㎝ 정도로 추정된다.
II구역 18호분은 무덤구덩이가 2단으로 조성되었다. 먼저 표토에서 원형으로 약간 경사지게 파고 그 안쪽에 길이 216㎝, 폭 65㎝, 깊이 25㎝의 2단 무덤구덩이를 팠다. 관못으로 추정한 나무널의 크기는 길이 170㎝, 폭 50㎝이다. 봉분은 남아 있지 않다. II구역 20호분은 무덤구덩이 길이 245㎝, 폭 55㎝, 깊이 20㎝이다. 관못으로 추정한 나무널의 크기는 길이 190㎝, 폭 50㎝ 정도이다. 봉분은 남아 있지 않다.
II구역 21호분은 봉분은 남아 있지 않고 무덤구덩이도 훼손이 심하여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고 깊이 25㎝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다. II구역 23호분 역시 봉분은 남아 있지 않다. 무덤구덩이의 장축은 능선과 일치하는 동남-서북 방향으로 길이 255㎝, 폭 93㎝, 깊이 114㎝로 다른 묘에 비하여 비교적 크고 깊이도 깊다. 관못으로 추정한 나무널의 크기는 길이 210㎝, 폭 70㎝이다.
[출토유물]
I구역 4호분에서 토제 매병 1점이 출토되었고, II구역 9호분에서 토제 병·청자 대접·청동 대접 각 1점, 청자 접시·청동 숟가락 각 2점이 출토되었다. II구역 18호분에서 토제 병 1점, II구역 20호분에서 자기 병·토제 항아리·청동 숟가락 각 1점, II구역 21호분에서 청자 접시·청동 비녀·청동 장식 각 1점이 출토되었다.
II구역 23호분에서는 청자 주전자·청자 퇴주기·청자 정병·청자 탁잔·청자 민무늬 항아리·토제 인형 각 1점과 동전 47점이 출토되었다. 동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당나라의 개원통보이며 가장 늦은 시기의 것은 송나라 휘종 정화 연간(1111~1117)의 정화통보이다. 고려시대 동전은 없다.
[현황]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유적은 폐기되어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안동 지역 고려 고분은 조선 고분에 비하여 수가 매우 적고, 특히 학술 발굴이 이루어진 고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고려시대 민묘의 구조나 부장 유물의 상태 등을 확인함으로써 고려시대 안동의 분묘 형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23호분에서 출토된 청자 일괄 유물은 형태는 세련되지 않지만 12세기 고려 전성기의 안동 지역 청자 제조 실태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