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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476
한자 朝鮮民立大學設立運動
영어의미역 Korean Private College Foundation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교육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20년 6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안동시|서울특별시
관련인물/단체 한규설|이상재|윤치소|이승훈|조선민립대학기성회|한용운|강인택|유성준|류인식|이균호

[정의]

1920년대 안동 등지에서 민족 대학을 설립하고자 했던 운동.

[목적]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은 민족의 우수 인력을 우리 민족의 손으로 길러내고자 민족에 의한, 민족을 위한, 민족의 교육을 목표로 삼았다.

[발단]

1920년 6월 한규설이상재·윤치소 등 100명이 조선교육회 성립 발기회를 개최하면서 비롯되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인사들은 민족 교육을 하는 최고의 교육기관이 없음을 개탄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민립대학을 설립하고자 결의하였다.

[경과]

1922년 11월 이상재이승훈 등이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결성하였다. 1923년 3월 29일 1,170명의 발기인 가운데 462명이 서울 조선중앙기독교 청년회관에 모여 발기총회를 열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3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자본금 1,000만 원 모금 운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조직으로 중앙집행위원회와 지방부를 두었다. 1923년 4월 2일 제1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위원장 이상재, 상무위원 한용운·강인택·유성준·이승훈 등 9명이 선출되었다.

1923년 말까지 전국 100여 개 지역에 지방부가 조직되었고, 만주 간도와 봉천(현 선양), 미국 하와이 등지로 확산되었다. 당시 경상북도에 파견되어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안동 출신 류인식이었다. 류인식은 민립대학 설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된 지방부의 경상북도 담당위원이었고,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경상북도 지역을 순회하며 강연회를 열어 민립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연설하면서 모금 운동을 벌였다. 또한 안동 지역 청년운동을 주도하던 이균호(李均鎬)와 민립대학설립기성회 지방부 설립을 논의하였으나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결과]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관립 경성제국대학 설립을 서두르면서 운동의 기운을 무마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민립대학설립기성회가 배일사상을 고취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강연회를 중지시키고 청중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은 민족 운동의 하나로 판단한 일제가 방해하면서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은 민족의 교육과 장래를 위하여 민족 자신의 힘으로 대학을 세우고 운영하려는 의지를 천명한 운동이었다. 또한 계몽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으며, 민족 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 구국운동의 활성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03.23 내용 수정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설립 시기 1922년 1월->1922년 11월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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