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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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戊申亂 |
영어음역 | Musinran |
영어의미역 | 1728 Insurrection |
이칭/별칭 | 정희량의 난,이인좌의 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정의]
1728년 안동 등지에서 소론 이인좌와 북인 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 세력을 타도하기 위하여 일으킨 난.
[개설]
무신란(戊申亂)은 1728년(영조 4) 무신년에 일어나 무신란이라 하는데, 충청도에서는 이인좌(李麟佐)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 영남에서는 정희량(鄭希亮)이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정희량의 난이라고도 한다.
[역사적 배경]
박필현 등 소론 과격파는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과 영조의 즉위로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가 위협받자 자파 세력과 영남의 남인들을 포섭하여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노론이 경상우도 지역에 세력을 확산시켜 종래 자신들이 유지해 오던 향촌에서의 지위를 위협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적극 가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과]
무신란 주도층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좌도의 남인들을 적극 포섭하고자 하였다. 이때 이들과 접촉한 안동 사림은 권구(權榘), 권덕수(權德秀), 권만(權萬), 류몽서(柳夢瑞), 류몽우(柳夢禹), 황익재(黃益再), 김민행(金敏行) 등이었다. 난을 주도하였던 이인좌의 동생 이웅좌(李熊佐) 등은 1728년 3월 12일 청주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던 정희량의 군사들이 오지 않자, 안동에 들어와 권구·권덕수·류몽서·김민행 등에게 합세하라고 촉구하였다. 그러나 안동 사림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정희량이 우도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정희량 등의 반군은 3월 20일 안음 고현에서 기병하여 안음과 거창을 점령하고, 조성좌(曺聖佐) 등은 합천과 함양 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의 동조를 얻지 못하였고, 또한 조직적인 무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따라서 관군의 반격에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반면 관망하던 각지의 사림들은 이들을 토벌하는 의병을 일으키는 대열에 속속 합류하였다.
안동에서는 3월 29일 김이상(金以鋿)·권덕수·김민행·김몽렴(金夢濂)·배행건(裵行健)·김계탁(金啓鐸)·김천환(金天煥)·김달룡(金達龍) 등 7인이 향교에 모여 전정랑(前正郞) 류승현(柳升鉉)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의병 창의 격문을 각 면과 군현에 반포하였다. 그러나 안동 등지의 의병진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반군은 거의 궤멸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