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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333
한자 泉旨里
영어음역 Cheonji-ri
이칭/별칭 샘나루,성제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순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7.39㎢
총인구(남, 여) 902명(남자 436명, 여자 466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487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마을을 개척할 당시 큰 웅덩이에서 솟아나는 샘물의 맛이 좋아 천지·샘나루라 하였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올 것이라 하여 성을 쌓았는데 공민왕이 오지 않고 예천군 하리면으로 가 버렸으므로 성을 완성하지 않고 철거한 흔적이 있어 성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자연마을인 새터는 천지리 입구에 있는 마을로 약 170년 전 탁씨 노인이 동금 장사를 하면서 다니다가 살기 좋아 정착하여 새로 마을을 이루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창마(일명 창리)는 천지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약 200년 전에 한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개척하였는데, 조선시대에 길안현의 창고가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다리(일명 산하리)는 천지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 아래에 있는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웃장터는 천지리에서 시장이 먼저 형성되었던 마을로 아래장터에 비해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아래장터는 웃장터가 옮겨서 형성된 마을로, 웃장터 아래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말 길안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4년 길안현과 임남현으로 분리되었을 때도 길안현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길안현과 임남현을 통합하여 길안면으로 개편하면서 안동군 길안면 천지리가 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은 임봉산과 계명산 사이에 있으며, 마을 가운데로 길안천이 흐른다. 들이 넓어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현황]

길안면 북서쪽에 위치하며, 길안면 소재지로 안동 시내에서 동남쪽 약 24㎞ 지점에 있다. 2008년 12월 기준 면적은 7.39㎢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487세대에 902명(남자 436명, 여자 46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길안면의 중심부인 만큼 다른 곳에 비해 번화하고 인구도 많으며 자연마을도 장터 위주로 발달하였다. 천지1리·천지2리·천지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샘나루·새터·창마·산다리·웃장터, 아래장터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창마에는 용소(龍沼)에 얽힌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안동군 길안면 산달리에 사는 성주이씨 가문에 온 집안이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났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는 아주 신통한 힘을 지녀서 사람들은 장사가 태어났다고 수군거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이도 나고 걷기도 하며 젖보다도 밥을 먹었다.

아직 첫돌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어머니가 시장에 갔다 오니 놀랍게도 시렁 위에 올라가 흰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데, 겨드랑이에 날개까지 돋아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장사가 나면 역적이 된다 하여 국법으로 그 집안을 멸족시켰으므로 소문이 자꾸 퍼지면 장사는 물론 친척까지도 모두 화를 입게 될 처지였다.

성주이씨 일가는 결국 장사를 죽이기로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썼지만 어린 장사가 힘에 지혜까지 갖춘 터라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곤히 낮잠을 자는 틈을 타서 큰 널빤지로 장사를 덮고 떡메로 쳐서 죽여 버렸다. 장사가 숨을 거두자 건너편 산기슭에 장차 용이 날 곳이라 하여 용바위라 부르던 곳에 용마가 한 마리 나타나 큰소리로 하늘을 향해 부르짖더니 산기슭 아래로 곤두박질쳐 큰 못 속에 빠져 죽었다.

용마는 장사가 타는 말로서 장사가 태어나면 하늘이 점지한 용마도 동시에 태어나 장사와 만나면 서로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용마가 빠져 죽은 뒤 못의 물빛이 하루에도 세 번씩이나 변하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 못을 흙으로 메웠으나 번번이 큰 홍수가 나 다시 못이 생겨나므로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로 용마가 빠져 죽은 못을 용소라고 하였다. 예전에는 용소에 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메워졌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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