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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서울에서 시작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3~4월 동안 충청남도 아산 각지에서 만세 시위, 횃불 시위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독립운동. 아산의 3·1운동은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지금의 온양초등학교] 학생들의 만세 시위로부터 시작하여 4월 4일 선장면 군덕리 시장에서 지역민들의 만세 시위를 끝으로 약 25일에 걸쳐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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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나라 빚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고자 일어난 국권수호운동. 아산 지역의 국채보상운동 지회 건설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아산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은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국채보상금을 의연(義捐)[사회적 공익이나 자선을 위하여 돈이나 물품을 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여성들에 의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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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1863년(철종 14) 고종이 즉위한 뒤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서구 열강의 침략 가능성이 높아지던 상황에서 왕권 강화책을 추진하였다. 양반 유생층의 지역적 기반인 서원 철폐가 대표적이었다. 이로 인해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도 도산서원(道山書院), 인산서원(仁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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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명문가인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 다섯 명을 독립운동가로 키운 여성 지사. 박안라(朴-)[1853~192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생원 박준호의 장녀이다. 남편은 충무공 이순신의 9세손 이도희(李道熙)이며, 자식으로는 이규풍(李奎豊)과 이규갑(李奎甲)이 있다. 박안라는 1853년 10월 16일 박준호의 장녀로 황해도 배천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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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회의 회원들이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장인 친일파 박용하를 처단한 의열 투쟁.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는 친일에 철저했고 악질로 악명이 높았다고 전해져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가 지목하여 사살하였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조직된 비밀결사 단체로 국내의 부호들로부터 의연금 모집, 일본인이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여 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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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홍성군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성낙붕(成樂朋)[1881~1919]은 1919년 4월 4일 홍성군 내의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성낙붕은 1881년(고종 18) 11월 19일 아산군 도고면 석당리 29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석당리 295번지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가한 뒤 군자금 모집 활동과 도고면장 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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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는 온양온천 운영권을 인수하여 경영한 목욕 숙박시설. 신정관(神井館)은 1926년 11월 사설(私設) 철도회사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朝鮮京南鐵道株式會社)에서 온양온천주식회사(溫陽溫泉株式會社)로부터 온양온천을 인수한 뒤에 세운 온천장(溫泉場)이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청 철도국에서 신정관호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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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실옥리 곡교천에 처음 만들어졌다가 일제강점기 때 온양수리조합이 개축한 농업용 관개시설. 실옥보(實玉洑)는 17~18세기 곡교천의 물을 농사에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저수지였다. 실옥보는 조선 후기 만들어진 이래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3년 5월 개인 소유주가 용수료(用水料) 징수를 목적으로 조선총독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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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출신 독립운동가인 남편 이규풍을 헌신적으로 도운 여성 애국지사. 오세라(吳-)[1875~1939]는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남편 이규풍(李奎豊)을 도와 항일 운동을 했다. 오세라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부사 오태근의 장녀이다. 남편은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이규풍이다. 자식으로는 아들 이민호(李敏浩)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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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남선 개통과 온양온천의 개발에 따른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6동]의 근대적 신시가지로의 환경 변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군에 존재했던 온양면(溫陽面)은 지금의 아산시 온양1~6동 일원이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아산, 온양, 신창 3개 군(郡)이 아산군으로 통합되었고, 온양면에 아산군청·온양경찰서·공주지방법원 온양출장소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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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무렵부터 1926년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는 온양온천에서 온양온천주식회사가 경영한 목욕 숙박시설. 온양관(溫陽館)은 온양관광호텔의 전신으로 조선시대 왕실의 온천 휴양지인 온양행궁(溫陽行宮)[온궁(溫宮)]이 1900년대 초 일본인에게 넘어가면서 기존 건물 철거 후에 세워진 건물이다. 이어 사설(私設) 철도회사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朝鮮京南鐵道株式會社)가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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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프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호는 민촌(民村)이며, 충무공 이순신의 12대손이다. 집안이 이사를 하면서 충청남도 천안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소설가이다. 이기영(李箕永)[1895~1984]은 1895년 5월 29일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회룡리[현 배방읍 회룡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사립 영진학교(寧進學校)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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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달용(李達鎔)[1889~1919]은 1919년 3월 18일 밤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모루[磨石隅]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달용은 1889년(고종 26) 2월 3일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현재 염치읍] 강청리 321번지에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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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 현대 시기에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서양화가. 이마동의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청구(靑驅)이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업학교에 다니다가 1915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였으며, 고희동(高羲東)[1886~1965]과 이한복(李漢福)[1897~1940]의 지도를 받아 미술계로 들어선 서양화가이다. 이마동(李馬銅)[1906~1981]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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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러시아 연해주, 중국 만주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민호(李敏浩)[1895~1944]는 1919년 3·1운동 당시 황해도 일부 및 전라도, 충청도를 돌아다니며 청년들을 모아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22년 가족을 동반하고 러시아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다시 중국 만주(滿洲)로 들어가 신민부(新民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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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현대 시기에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석공예가. 본명은 이평래(李平來)이며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하라(賀羅)이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이순석(李順石)[1905~1986]은 1905년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공세리성당의 프랑스인 신부 에밀 드비즈(Emile Pierre 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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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현대 시기에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서양화가이며 당림미술관 설립자. 이종무(李種武)[1916~2003]는 1916년 9월 10일 충청남도 온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호는 당림(棠林)이다. 1935년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으로부터, 1936년부터 일본 도쿄에 있는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學校]에서 공부하면서 후지시마 다케지[藤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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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행정관료이며, 현대 시기의 교육가이자 법학자. 이항녕(李恒寧)[1915~2004]의 호는 소고(小皐)이며, 1915년 충청남도 아산 둔포면 둔포리[현 아산시 둔포면 둔포리]에서 태어났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다가, 둔포공립보통학교[둔포초등학교 전신] 교원으로 재직하던 부친의 뜻에 따라 같은 학교에 입학하였다.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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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배와 지역민에 의한 독립운동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된 시기.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는 일반적으로 1910년대의 무단 통치기, 1920년대의 문화 정치기,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의 민족 말살 통치기 등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일제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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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시인이자 대중가요 작사가.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본적은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이다. 본명은 조영출(趙靈出)로,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서 태어나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필명으로 김다인(金茶人), 김운탄(金雲灘), 김호(金湖), 남녀성(南麗星), 부평초(浮萍草), 산호암(珊瑚岩), 양훈(楊薰), 이가실(李嘉實), 함경진(咸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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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천도교 구파 중심으로 충청남도 아산 지역 교인들이 민족 독립을 기원하며 전개한 기도문 암송 운동. 천도교멸왜기도운동(天道敎滅倭祈禱運動)은 천도교에서 1936년부터 일제의 패망과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는 기도문을 매일 아침, 저녁 식고(食告)[천도교에서 식사 때마다 한울님에게 고함] 때 외도록 하고 유사시에 대비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였던 운동이다. 아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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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데구치 야사부로가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동에 온천공을 시굴한 뒤 세운 목욕 숙박시설. 온양온천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시대에는 온정(溫井), 고려시대에는 온수(溫水), 조선시대 이후에는 온양(溫陽)이라 불리며 130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 왕이 머물던 온궁(溫宮)이 훼손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다. 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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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시기에 주로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정치인. 한창우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공세리성당을 다니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다. 부친 한규동(韓奎東)은 1923년 민립대학기성회(民立大學期成會) 아산지방부(牙山地方部)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한창우(韓昌愚)[1910~1978]는 1910년 충청남도 아산시 아산호로20번길 33[인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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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30년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형평사 아산분사를 통해 벌인 신분차별 철폐운동 및 사회운동. 형평사(衡平社) 운동은 일제강점기에 백정(白丁)들이 갑오개혁에 의해 법률상으로 천인(賤人) 신분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에서는 신분이 존속되어 차별받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 운동이다. 아산 지역에도 형평사 아산분사(牙山分社)가 설치되어 활동을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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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연고를 두고 1930년대에 의열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홍가륵(洪加勒)[1913~1950]은 1913년 10월 19일 출생하였다.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온천리 97이다. 태어난 곳은 경기도 수원군 음덕면 남양리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기독교 감리교 목사였던 홍승하(洪承河)이며, 홍형준(洪亨俊)이 아버지이다. 홍가륵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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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온양수리조합이 충청남도 아산시에 만든 저수지인 홍공제 건축공사의 사업 개요를 담은 기념비. 홍공제 준공비(洪公堤竣工碑)는 1927년 실옥보(實玉洑)와 온양저수지 공사가 완료되면서 사업 추진자를 기리고 사업 성과를 알리기 위해 제작되었다. 아산군수 홍우숭(洪祐崇)은 온양면과 인근 신창면, 선장면 등 논농사의 관개시설 개선을 목적으로 1925년 온양수리조합(溫陽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