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25
한자 溫陽館
영어공식명칭 Onyang In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대로 1459[온천동 242-1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형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5년 6월연표보기 - 온양관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26년 11월연표보기 - 온양관 해체
최초 설립지 온양관 - 충청남도 온양군 서면
현 소재지 온양관광호텔 -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대로 1459[온천동 242-10]지도보기
성격 숙박시설
설립자 온양온천주식회사

[정의]

근대 시기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동에 있었던 목욕 숙박 시설.

[개설]

온양관(溫陽館)온양관광호텔의 전신으로 조선시대 왕실의 온천 휴양지인 온양행궁(溫陽行宮)[온궁(溫宮)]이 1900년대 초 일본인에게 넘어가면서 기존 건물 철거 후에 세워진 건물이다. 이어 사설(私設) 철도회사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朝鮮京南鐵道株式會社)가 인수한 뒤 신정관(神井館)이 세워졌다. 6·25전쟁 뒤에 당시 교통부가 신정관 자리에 온양철도호텔을 건설하였고, 1953년 민간인에게 이양된 끝에 온양관광호텔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른다.

[설립 목적]

온양온천은 약천(藥泉)이자 왕의 휴양시설인 온궁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대한제국은 탕직(湯直)을 두고 이를 관리하였다. 1904년 친일 관료 예종석(芮宗錫)이 궁내부로부터 온양온천 개발을 위한 온천제수사(溫泉躋壽社) 설립 허가를 받았다. 이 무렵 일본인 아미토 도쿠야[網戶得哉]는 온양온천 인근 토지를 점거하면서 온천 개발권을 강탈하였고, 1905년 6월부터 설비를 완료해 온천 영업을 시작하였다. 온양관은 일본인 자본가들이 온양온천을 장악하여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00년대 초 아미토 도쿠야는 자본금 10만 원 규모로 온양온천주식회사(溫陽溫泉株式會社)를 설립하였다. 온양온천주식회사에는 간 시게타로[關繁太郞], 나카무라 사이조[中村再造], 와다 쓰네이치[和田常市], 야마구치 다헤에[山口太兵衛] 등 재조(在朝) 일본인 사회의 중심인물이 주주로 참여하였다. 온양온천주식회사는 온궁터를 강탈하고 나서 온궁 경내의 혜파정(惠波亭), 신정비각(神井碑閣), 영괴대비각(靈槐臺碑閣)만 남기고 모두 전각들을 철거하였다.

1920년 6월 6일 온양온천주식회사는 온천 개축 공사를 마치고, 충청남도청 고위 관료와 관민 유력자가 참석한 가운데 낙성식을 개최하였다. 이즈음 조선인 방문객을 위해 온돌방을 구비한 조선식 여관을 신축했다고 신문에 홍보하였다. 1926년 11월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온양온천 운영권을 인수하면서 온양관은 문을 닫게 되었고, 그 자리에 신정관이 세워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온양온천주식회사는 온천 욕장(浴場) 객실 설비, 공중 입탕(入湯), 숙박 편의시설 관리, 부대사업 시행을 목적으로 삼았다. 온양관의 대중목욕탕은 일본인용과 조선인용으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의의와 평가]

온양관 설립은 대한제국 소유의 온양온천이 민간에게 개방된 계기가 되었으나, 일본인 자본가에 의해 주변 토지와 온천 운영권이 강탈당한 채 이루어진 결과였다. 또한 온천 이용에 있어서 일본인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심하여 조선인들의 불만이 높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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