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산2리 산신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286
한자 葛山二里山神祭
영어공식명칭 A Sacrifice to a Mountain God of Galsan-2ri
이칭/별칭 산신제(山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2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효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산제당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2리 지도보기[마을 뒷산]
의례 장소 거리제당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2리 지도보기[마을회관 앞 세 갈래길]
의례 장소 샘제당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2리 지도보기[마을 공동우물]
성격 민간신앙|동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
신당/신체 마을 뒷산 산제당, 거리제당|마을회관 앞의 세 갈래길, 샘제당|마을의 공동우물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2리에서 산신을 모시는 마을공동체 신앙.

[개설]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2리 여술[如思里]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마을 뒷산의 산제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뒤이어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거리제를 지낸다. 과거에는 마을 중앙의 큰 샘에서 샘제도 지냈으나, 지금은 중단되었다. 60여 호가 거주하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으나,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가 들어서면서 농지가 모두 매각되어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나이가 많은 토박이 주민들이 산신제를 지내고 있지만, 산신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연원 및 변천]

갈산2리에서는 산신제와 더불어 거리제, 샘제도 함께 지낸다. 여술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평안, 농사의 풍년 등을 기원하며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제당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거리제는 거리를 오가는 주민들이 평안을 기원하며,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세 갈래로 나뉜 진입로에서 지냈다. 평소에는 주민들이 왕래하는 곳이지만 제사 당일에는 길을 가로질러 인줄[금줄]을 드리웠다. 샘제는 마을회관 뒤편 논 가운데에 있는 큰 샘에서 지냈다. 이 샘의 물이 워낙 풍부해 60호의 동네 사람들이 다 먹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부정하지 않은 깨끗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샘 청소를 하며 샘제를 지냈지만 마을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이 샘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샘제도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2리 여술마을 뒷산 중턱에 단칸의 당집이 있다. 원래의 당집은 흙담에 초가를 얹었는데 산불로 소실되어 1950년대에 새로 지었다. 현재의 산제당[당집] 건물은 벽돌로 벽을 쌓고 기와를 얹은 단칸집이다. 중앙에는 얇은 철판으로 된 문을 달아 두었다. 내부에는 정면 전체에 50㎝ 정도의 높이로 시멘트로 단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제기를 보관하였다.

거리제당은 마을로 진입하는 진입로로, 회관 앞의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진 곳이다. 평소에는 주민들이 왕래하지만 제사 당일에는 이곳에 금줄을 꼬아서 드리워 종교적 성소가 된다. 주민들이 이 길을 오가더라도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사를 지낸다.

샘제를 모시던 큰 샘은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60호의 주민들의 유일한 식수로 활용될 정도로 수원이 넉넉했다. 샘제를 앞두고 일 년에 한 번씩 샘을 청소했다. 음력 정월이면 얼음이 녹지 않아 샘이 차갑다. 샘 청소는 부정하지 않는 깨끗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했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샘을 청소하려면 많은 정성이 필요했으므로 샘 청소를 하면 소원을 성취한다고 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가 청소를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여, 이를 원하는 청년들이 참여하였다.

[절차]

제사를 주관할 제관은 일주일 전에 선출하는데,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운이 닿는 사람으로 선정해 ‘주당 닿은 사람’이라 부른다. 제관 이외에 축관도 별도로 한 명을 가려둔다. 만약 제사를 앞두고 제관이 부정한 일을 당하면 제관을 다시 선출하거나 제사를 아예 연기한다.

제비(祭費)는 집집마다 쌀 한 되씩 성의껏 추렴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는 추렴하지 않고 동네 기금의 일부를 사용한다. 동네 기금은 동네에서 거주하다가 후손을 두지 못하고 사망한 분들이 기탁한 땅에서 도지(賭地)를 받은 것으로 마련했다.

제물은 제관 집 부인이 술과 떡을 마련한다. 본래 인근의 천안장에서 구입했는데, 지금은 온양장에서 준비한다. 수돗물이 보급되어 1980년대 중반부터 샘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샘제도 중단되어 지금은 산신제와 거리제 제물만 마련한다.

제사 당일에는 왼새끼로 꼰 ‘인줄’을 마을 입구를 비롯하여 제관의 집, 산제당, 제물을 마련할 수도 등에 드리운다. 인줄을 드리우면 외지인들이 함부로 마을 내로 출입하지 않으며, 부정한 사람이라면 제관 집에도 드나들지 않는다. 인줄이 드리운 곳에 부정한 사람이 드나들면 본인뿐만 아니라 마을에도 화(禍)가 미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산신제를 지내는 당일 밤 11시경이 되면 제관을 비롯하여 축관, 이장, 동계장 등이 함께 산제당으로 올라간다. 먼저 제단 위에 제물을 진설하고 이어 분향(焚香)한다. 제관이 첫 잔을 올리고 재배하면 축관이 축문(祝文)을 읽는다. 축문을 마친 후에는 두 번째 잔을 제관이 올린 후 마지막으로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제관이 산신소지를 먼저 올리면, 참석한 제사 주관자들의 소지를 한 장씩 올린다. 그런 후에 60호의 가구주 소지를 한 장씩 모두 올린다. 소지 올리기를 마지막으로 모든 제사가 끝이 나면 제물을 내리는데, 이때 제물을 조금씩 떼어 제단에 올려 두고 남은 것으로 음복(飮福)한 뒤에 하산한다.

산신제를 지내러 올라가면 일부 가정에서는 가정의 안녕을 위해 마중시루[마짐시루]를 마련해 터주에 올린다. 산신제 올리는 시간에 맞추어 마중시루를 올리고 정성을 드린다. 마중시루는 마을의 산신을 그 집 안으로 마중하는 것이므로 재수가 좋을 것이라고 여긴다.

산신제를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은 제관 집에 별도로 마련한 제물을 가지고 거리제를 지내러 마을 입구로 향한다. 마을 입구의 거리제당에 도착하면 제물을 도로 중앙에 진설하고 제사를 모신다. 이때도 주민들은 전혀 참여하지 않으며 제관 일행만이 조용히 제사를 모신다. 샘제를 중단한 후로는 거리제를 마친 후에 해산했다가 이튿날 모여 음복한다. 예전에는 거리제를 마치고 샘제를 지내러 갔는데, 자정이 지난 늦은 시간이어서 잔을 붓고 샘제 소지만 올리는 방식으로 간단히 지냈다. 샘제를 용왕제(龍王祭)라고도 불렀는데, 샘의 물이 끊임없이 많이 나서 식수(食水)가 부족하지 않고, 깨끗한 물이 샘솟게 해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지금은 샘을 메워 그 흔적조차 없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2리 마을에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가 들어서면서 도심화가 진행되어 외부인의 유입이 많다. 토박이 주민들 대부분이 노령으로 제사에 대한 관심도 낮아 산신제 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참고문헌]
  • 이필영 외, 「민속」(『아산탕평 택지개발 사업지구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 충청문화재연구원·대한주택공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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