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산1리 산제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285
한자 葛山一里山祭祀
영어공식명칭 Religious Service for the God of a Mountain of Galsan-1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효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산제당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1리 지도보기 마을 뒷산 중턱
의례 장소 중앙제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1리 지도보기 마을 중앙의 공터
의례 장소 거리제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1리 지도보기 마을 뒷산 중턱
성격 민간신앙|동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중 길일
신당/신체 산제당[신당]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1리에서 음력 정월에 길일을 택해 산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1리 안지므레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 이전에 일진이 좋은 날을 택해 산제사와 중앙제, 거리제의 순서로 마을공동체 제사를 모신다. 산제사는 마을의 뒷산인 북덕산[117.5m] 중턱에 있는 제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건강,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지낸다.

[신당/신체의 형태]

갈산1리 산제사의 신당인 산제당(山祭堂)은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마을 뒷산 중턱에 있으며, 제당 주위에는 숲이 무성하다. 산제당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칸 건물이며, 내부에는 신위나 산신도 등의 신성물이 없다. 초가지붕이었으나 낡아 무너져서 지금의 형태로 1990년대 후반에 바꾸었다. 당시 주민들이 걸립(乞粒)을 하여 제당을 건립했으며, 제당 안에는 예전부터 사용한 제기가 보관되어 있다. 여름철에는 숲이 울창해서 산제당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

[절차]

1.제관 선출

해마다 음력 정월 초닷새 이전에 마을 노인이 책력을 보고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제사를 주관할 주당[제관], 심부름꾼을 각 한 명씩 선출한다. 주당은 가장 재수 있는 사람으로, 노약자, 환자가 있는 집, 부정이 있는 초상집, 아이가 태어난 집의 식구는 제외하고 선출한다. 주당은 ‘당일정성’이라 하여 당일에는 집 밖 출입을 금하고 술과 담배, 부부생활 등도 삼간다. 주당 내외는 산제사를 드리는 날까지 매일 목욕재계를 한다. 마을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날을 뒤로 미루어 2월에 다시 택일(擇日)한다.

마을 인근에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가 들어오면서 외지인의 유입이 많아져서 주당 선출 방식이 바뀌었다. 더 이상 생기복덕을 따지지 않으며, 원주민 중에 부정하지 않은 가장 깨끗한 노인을 선정해 맡긴다. 언제인가 특별한 이유 없이 한 해 동안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주민들이 무고하게 죽었다. 주민들은 산제사를 지내지 않아 벌을 받은 것이라고 여겼고, 그 후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 있다.

2. 제사 준비

제사를 지내기 전날에 동네 주민이 마을 주변을 청소하고, 마을 입구에 왼새끼로 꼰 금줄을 드리운다. 예전에는 금줄에 길지와 솔가지를 끼웠으나. 제사를 간소화하면서 금줄만 드리운다. 마을 입구에는 황토를 양쪽으로 세 군데씩 모두 여섯 무더기를 펴 두어 부정을 막고자 했다. 제물을 준비하는 주당 집에는 금줄은 드리우지 않고 황토만 펴 둔다. 황토는 마을 앞에 있는 ‘안산’에서 파온다. 마을 입구에 황토를 편 다음에 길 중앙에 짚을 열십자로 깔고, 그 위에 물 한 동이를 떠다 놓고 동이의 입구는 종이로 봉한다. 이때 산제당 안에도 거리와 마찬가지로 물 한 동이를 놓아둔다. 이 물은 제사를 지낸 후에 바닥에 쏟아 버린다.

3. 제물 마련

산제사에 필요한 제비(祭費)는 집집마다 거두지 않고 마을 기금의 일부를 사용한다. 선출된 심부름꾼이 부정을 피하기 위해 새벽에 장에 나가 제물을 장만해 온다. 장을 볼 때는 물건값은 깎지 않는다. 상인도 산제사에 쓸 제물이라고 하면 알아서 비싸게 팔지 않는다.

제주(祭酒)는 제사를 지내기 전날에 제관 내외 중 한 사람이 조라술을 산제당 안에서 담근다. 아침에 술을 담그면 이튿날에 제사를 지내러 올라가면 어느 정도 숙성이 되어 있어 제주로 사용할 수 있다. 제물을 만들 때에 쓰는 물은 ‘안산’ 옆에 있는 ‘황새짐말’의 샘에서 떠온다. 제물 준비는 월경(月經) 중이지 않은 여자가 맡아서 한다. 제물을 조리할 때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다. 제물로는 돼지머리, 떡, 탕, 나물, 삼색 과일, 포, 조라술 등을 마련한다. 돼지머리는 산제사에만 올리고 중앙제와 거리제에는 올리지 않는다.

4. 동제 순서

산제사는 밤 11시 30분경에 시작한다. 주당 내외와 제물을 운반할 심부름꾼만 제사에 참석한다. 주당이 제물을 진설하는데, 수저는 두 벌을 놓는다. 산제의 대상은 뒷산의 산신(山神)이지만 수저 두 벌로 보아 산신을 내외로 간주한다. 산제는 강신(降神), 참신(參神), 분향재배(焚香再拜), 제관 이하 참례자의 재배(再拜), 헌작(獻爵), 독축(讀祝), 소지(燒紙)의 순서로 한다. 축문(祝文)은 주당이 직접 읽으며, 그 자리에서 소각한다. 축문은 산제사, 중앙제, 거리제에 사용되는 것이 각각 있다. 본래는 한문으로 쓰여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에는 한자의 음(音)만 옮겨 적혀 있다. 소지는 마을 전체를 위해 대동소지를 올리고 각 집의 대주소지를 한 장씩 올린다.

산제를 올릴 때에 제관이 "메 올리세요!"라고 여러 차례 마을을 향해 외친다. 그러면 각 가정에서는 ‘마짐시루’를 올린다. 마짐시루를 일러 ‘가족시루’라고 한다.

집안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터주에 마짐시루를 올린다. 주부는 백설기를 미리 쪄놓고 기다렸다가 "시루 올리세요!"라는 소리가 들리면 장독대에 짚을 깔고 청수(淸水), 시루떡 등을 올린다. 그런 후 사방을 돌면서 서너 번씩 절을 한다. 치성을 드린 후에 물은 장독대 부근에 비우고 떡은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식구들끼리 나누어 먹는다. 이처럼 모시는 마짐시루는 마을에서 위하는 산신을 집 안으로 마중하는 것으로, 산신을 맞이해야 집안이 편안하고 화평하다고 해서 많은 가정에서 행했다.

산신제를 지내고는 술은 제당(祭堂) 내부 곳곳에 조금씩 붓고, 삼색 과일과 북어, 떡 등은 제단 위에 조금씩 떼어 놓고 하산한다. 남은 술은 가지고 내려와 중앙제와 거리제를 지낼 때 사용한다. 중앙제를 지내는 곳에는 신체를 형상화하기 위해 물이 네 사발 정도 들어가는 조그마한 동이를 놓아 둔다. 제사를 지내기 전날에 중앙제 터에 열십자로 짚을 깔고 그 위에 단지를 창호지로 덮어서 올려 둔다. 제사 당일에는 물동이 앞에 떡, 삼색 과일, 북어만 간단히 올리고 제사를 모신다. 중앙제를 지내는 순서는 산제와 같지만, 소지는 올리지 않는다. 거리제는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인 삼거리에서 지내는데, 특별한 신체는 없지만 황토를 펴 두어 제장(祭場) 을 표시한다. 중앙제와 같은 제물을 올리고 순서도 같다. 제관이 잔을 따라 붓고 거리제 축문을 읽는다. 제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음복한다.

[민속적 의미]

갈산1리 안지므레는 여러 개의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다. 마을이 산 아래에 있어 산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마을 사람들은 산신을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돌보는 중요한 신령으로 극진히 모신다. 산신의 돌봄으로 마을이 질서정연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뒷산에서 산제사를 지내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하고, 잡귀와 잡신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을 중앙의 공터에서 중앙제를 지내고, 마을 입구에서 거리제를 지냈다. 그 연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마을 사람들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활용해 신앙처를 만들어 의지하면서 생활하였다. 그러므로 산제사, 중앙제 거리제는 주민들 마음의 안식처였다고 하겠다.

[현황]

갈산1리 산제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해마다 마을 뒷산에서는 산신제를, 마을 중앙에서는 중앙제를, 마을 입구에서는 거리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 인근에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가 들어서면서 도심화가 진행되고 있어 제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참고문헌]
  • 이필영 외, 「민속」(『아산탕평 택지개발 사업지구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 충청문화재연구원·대한주택공사, 2006)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