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449
한자 馬韓
영어공식명칭 Maha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
집필자 강종원

[정의]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소국이 있었다고 비정되는 삼한시대 정치 연맹체.

[개설]

마한(馬韓)은 삼한시대 때 54개의 소국(小國)으로 이루어진 정치 연맹체이다. 1970년 이병도(李丙燾)가 지리적 위치를 근거로 추정하여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염로국(冉路國)이 있었을 것으로 비정한 이후, 온양 지역에 신흔국(臣釁國)이 있었다는 비정도 제기되었다. 최근에는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기반하여 마한 연맹체의 맹주국이었던 목지국(目支國)[월지국(月支國)]이 아산 지역에 위치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급부상하고 있다.

[내용]

마한은 기원전 1세기부터 3세기경까지 한강 유역으로부터 충청도·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여러 정치집단의 통칭이다. 마한이 존속했던 시기는 삼한시대 또는 원삼국시대로 구분하는데, 선사시대에서 진정한 의미의 역사시대로 전환되어 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마한에는 감해국(感奚國), 내비리국(內卑離國), 대석삭국(大石索國), 막로국(莫盧國), 벽비리국(辟卑離國), 사로국(駟盧國), 아림국(兒林國),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 첩로국(捷盧國) 등 54개의 소국이 있었던 것으로 『삼국지』「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 소국은 철기가 전래된 이후의 좁은놋단검[세형동검(細形銅劍)] 문화를 배경으로 등장한 다수의 정치집단들이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한 것으로 이해된다. 마한의 전체 호수는 10만여 호였으며 큰 나라는 1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

마한 연맹체의 맹주국은 목지국이었으며, 왕은 ‘진왕(辰王)’이라 일컬어 마한뿐만 아니라 삼한 여러 나라의 맹주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목지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광역시, 천안시, 아산만을 포함한 아산시 일대, 예산군, 금강 유역, 그리고 백제의 성장에 따라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일대에서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으로 중심지가 이동한 것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마한은 한강 유역에서 성장한 백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병합 시기는 『삼국사기』「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온조왕 대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3세기 고이왕 대로 이해된다. 246년(백제 고이왕 13) 한(韓) 세력과 중국 군현(郡縣) 세력과의 충돌로 인해 마한 연맹체가 해체되었고, 백제가 마한 연맹체의 맹주국인 목지국을 복속하였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목지국이 백제에 병합된 이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남쪽의 영산강 유역에는 신미국(新彌國)[침미다례(忱彌多禮), 신운신국(臣雲新國)] 등 여러 소국이 존재하였음이 확인된다.

[아산 지역의 마한 유적]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는 그동안 염로국, 신흔국 등의 소국이 위치하였을 것으로 비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추정 수준이었다. 청동기 문화를 보여 주는 아산시 신창면신창 남성리 돌널무덤 이후 아산 지역에서는 원삼국시대 마한 유적이 여러 군데 발견되었다. 와우리유적, 신법리유적, 구성리유적, 갈산리유적, 초사동고분군, 갈매리유적, 명암리 밖지므레유적, 신남리유적, 용두리 진터유적, 읍내리유적 등이 조사되었는데, 이들 유적에서는 주거지와 분묘, 유구(遺構) 등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탕정면명암리 밖지므레유적곡교천 유역에서 확인된 최대 규모의 분묘 유적으로 조성 시기는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말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지배층의 존재를 보여 주는 다양한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은 아산 지역에 마한의 유력한 소국이 존재한 사실을 보여 주며, 특히 명암리 밖지므레유적이 위치한 곡교천 유역은 마한의 맹주국인 목지국의 중심지일 가능성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어 추가 연구가 기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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