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 남성리 돌널무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68
한자 新昌南城里-
영어공식명칭 Stone Coffin Tomb in Sinchang Namseong-ri
이칭/별칭 남성리 석관묘,신창 남성리유적,아산 남성리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 40-3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이판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6년 6월 22일~29일 - 국립중앙박물관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 발굴 조사
소재지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 40-3 지도보기
성격 고분
크기(높이,지름) 돌널-70㎝[폭]|235㎝[길이]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 돌널무덤.

[위치]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와 동쪽 배미동 사이 해발 30~40m의 나지막한 구릉 지형에 있다. 북쪽으로는 곡교천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주변으로 넓은 충적 지형이 발달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남쪽으로는 낮은 구릉 지형이 동서 방향으로 발달해 있고, 동쪽 1.4㎞ 지점에는 신정호에서 북쪽 곡교천으로 흘러가는 오목천이 있다.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온양온천역에서 북서쪽 직선거리 3.7㎞ 지점의 배미농공단지 북서쪽 모서리에서 서쪽 방향의 마을 길[남성길]로 500m 정도의 위치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은 1976년 1월 30일 당시 토지 소유자인 안상천이 신창면 남성리의 낮은 구릉 지대에 자리한 과수원에서 우물을 파다가 동검(銅劍) 등 일괄 유물(一括遺物)을 발견하였고, 2월 4일 국립중앙박물관에 신고되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주관으로 1976년 2월 5일 현장 예비 조사와 6월 22일부터 29일까지의 수습 발굴 조사를 통해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이 학계에 보고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남성리유적은 초기 철기시대의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으로 추정된다. 고분 내에서는 한국형 동검, 즉 좁은놋단검[세형동검(細形銅劍)]과 방패 모양의 청동기[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대쪽 모양의 청동기[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 거친무늬거울[다뉴조문경[多紐粗文鏡]], 부채 모양의 도끼[선형동부(扇形銅斧)], 청동제 끌[동착(銅鑿)] 및 곱은옥[곡옥(曲玉), 옥으로 만든 장신구의 일종] 등 다량의 일괄 유물이 출토되었다.

[형태]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은 우물을 만들기 위한 작업 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지표 아래 2m 정도 깊이에 동서 길이 3.1m, 남북 폭 1.8m로 파 내려가면서 점차 폭이 좁아지도록 하였다. 바닥에 이르러 남북 폭 0.8~0.9m, 동서 길이 약 2.8m로 줄어든다. 바닥에는 잔존 길이 150㎝ 정도 편평한 석재가 깔려 있고, 서쪽 벽의 석재 일부도 3단[70㎝]까지 남아 있다. 바닥에는 1㎝ 정도 두께로 회청색 점토가 깔려 있다. 돌널의 크기는 폭 70㎝, 길이는 235㎝ 정도이다. 돌널의 뚜껑은 편평한 석재가 확인되지 않아 나무로 된 널판[목개(木蓋)] 형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40㎝ 내외의 돌이 내부에 꽉 차 있었다는 발견자의 정황 설명을 통해 볼 때, 돌널무덤 상부에 일정 두께로 돌을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 안에서는 좁은놋단검, 방패 모양의 청동기, 대쪽 모양의 청동기, 거친무늬거울, 부채 모양의 도끼, 청동제 끌 등의 청동 제품과 대롱옥[관옥(管玉), 구멍을 뚫은 짧은 대롱 모양의 구슬], 곱은옥, 덧띠토기[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검은간토기[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 칠기(漆器) 조각 등 모두 123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동검 대부분은 등날이 결입부(抉入部)까지만 있지만, 1점은 기부(基部)까지 등날이 발달해 있고 길이는 29.5㎝이다. 칼끝 부분이 길고 칼날의 폭이 매우 좁은 편이다. 거친무늬거울은 직경 18㎝로 큰 편이며, 거울 가장자리의 단면은 반원형이고 꼭지는 두 개가 나란히 있다. 뒷면에 새긴 문양 선이 대체로 가늘어 잔줄무늬거울[세문경細文鏡)]을 닮아 있는데, 그에 비해 선 간격이 넓은 별 모양 무늬[성형문(星形文)]을 배치하였다.

대전에서도 농경문(農耕文) 청동기로 알려진 방패 모양의 청동기가 출토되었다. 농경문 청동기의 경우 한쪽 면 오른쪽에는 머리 위에 긴 깃털 같은 것을 꽂은 채 따비로 밭을 일구는 남자와 괭이를 치켜든 인물이 있고, 왼쪽에는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인물이 새겨져 있다. 다른 한쪽 면에는 오른쪽과 왼쪽 모두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 끝에 새가 한 마리씩 앉아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한편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의 방패 모양의 청동기에는 아래쪽의 가지가 각기 두 가닥으로 크게 뻗어 있어 문양이나 형태 면에서 대전의 유물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 준다.

대쪽 모양의 청동기는 대전 괴정동유적이나 예산 동서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처럼 3점이 조합을 이루지만, 상단 가장자리가 바깥으로 좀 더 길고 예리하게 뻗어 있다. 방패 모양의 청동기나 대쪽 모양의 청동기에는 원형의 새끼 모양 고리 장식이 붙어 있고, 1점은 상단 고리 장식 위에 사슴 장식이 그려져 있다. 부채 모양의 도끼는 4.4㎝ 길이의 소형으로 도끼날 부분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으며 자루를 끼우는 구멍 가장자리에 1줄의 돋을띠무늬[돌대(突帶)]가 있다.

곱은옥은 천하석(天河石)으로 만들었다. 원래 2점이 출토되었지만 1점은 우물 공사 중 보관하다 분실되었다. 대롱옥은 응회암(凝灰巖)으로 만들었고 100여 점이 더 있었지만 우물 공사 중 보관하다 분실되었다. 그 밖에 덧띠토기는 아가리 조각과 몸체 하부 일부가 있다. 덧띠토기 중 한 점은 점토띠 아래 상하로 긴 꼭지형 돌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현황]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이 있는 곳은 2019년 현재 과수원이 아닌 일반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출토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일부 주요 청동기 유물은 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은 조사 상황으로 볼 때 돌무지돌덧널무덤[적석석관묘(積石石槨墓)]이다. 내부에서 좁은놋단검과 함께 출토된 방패 모양의 청동기, 대쪽 모양의 청동기, 거친무늬거울, 덧띠토기, 검은간토기, 천하석제 곱은옥 등 매우 특별하고 다양한 유물의 구성은 대전 괴정동유적이나 예산 동서리유적의 유물 상황과 닮아 있어 충청남도 지역 일대가 하나의 특징적인 청동기 문화권 양상을 보여 준다고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 시기적으로는 대전 괴정동유적보다 다소 늦은 기원전 3세기 대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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