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57
한자 韓連順
영어공식명칭 Han Yeonso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천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 한연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한연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에서 횃불 만세 시위 주도
출생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활동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영신학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으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일어난 염치읍 백암리 횃불 만세 시위 주도자.

[개설]

한연순(韓連順)[1896~?]은 1919년 3월 31일 밤 김복희(金福姬)와 함께 염치면 백암리 방화산(芳華山) 위에 횃불을 올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가계]

한연순은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정(南山町) 54번지[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한연순은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정 동산 신명여학교[현재 신명고등학교] 출신이다. 1919년 당시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 백암2리 구무골에 있는 백암교회 내 영신학교(永信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반인 구무골 출신의 김복희가 고향에 내려와서 3·1운동 소식을 전해주었고, 한연순김복희는 김지철 등의 마을 어른들과 상의하여 봉화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31일 밤이 되자 한연순김복희는 약 50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 뒷산인 방화산 꼭대기에 올라가 불을 피우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얼마 뒤에 온양면 온천리헌병분견소에서 헌병들이 출동해 총을 쏘며 산으로 올라오자, 한연순김복희와 도망치다가 산에서 굴러 떨어져 다치게 되었고, 한연순은 서울의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였다. 결국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공주로 끌려간 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징역 3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출옥 후 한연순은 한때 앨리스 해먼드 샤프(Alice Hammond Sharp)[사애리시(史愛理施)] 선교사가 운영하는 충청남도 강경 만동여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의학을 공부하였고, 고향인 대구로 돌아가 여성해방운동과 청년운동을 주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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