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56
한자 金福熙
영어공식명칭 Kim Bokhee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천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1년연표보기 - 김복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연표보기 - 김복희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에서 횃불 만세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김복희 공주 감옥에서 복역
몰년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김복희 사망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이주지 - 강원도
학교|수학지 이화여자고등학교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26[정동 32-1]
활동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화성군 대한부인회 회장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염치읍 백암리 횃불 만세 시위 주도자.

[개설]

1919년 3월 31일 밤 한연순(韓連順)과 함께 염치면[현재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芳華山) 위에 횃불을 올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가계]

김복희(金福姬)[1901~1986]의 아버지는 김윤필(金允弼), 어머니는 박씨이다. 6남매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김복희는 아산군 염치면 백암2리 구무골에 있는 백암교회 부설 영신보통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이때 미국인 로버트 샤프(Robert Sharp) 목사의 부인이자 선교사인 앨리스 해먼드 샤프(Alice Hammond Sharp)[한국 이름 사애리시(史愛理施)]의 눈에 띄어 앨리스 해먼드 샤프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4학년에 편입하게 되었다. 보통과를 마치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 이화여자고등학교] 1회 입학생으로 들어가 1919년 3월 말 졸업 예정이었다.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자 휴교령으로 고향에 내려왔다. 이때 영신학교(永信學校) 교사로 있던 한연순과 만나 만세운동을 추진하였고, 백암교회 장로 김상철 등 마을 유지의 도움을 약속받았다. 3월 31일 밤에 마을 사람들 약 50명이 마을 뒷산인 방화산에 올라 산꼭대기에 불을 피우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여성은 김복희한연순 둘뿐이었다. 헌병들이 출동해서 총을 쏘며 산으로 올라오자 김복희한연순과 달아나다 낭떠러지에서 굴러서 다쳤고 외숙모 집에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 중 결국 체포되어 공주로 끌려간 뒤 공주지방법원의 재판에서 징역 2개월 형을 선고받고 공주감옥에 수감되어 복역하였다.

출옥 후 이화여자전문학교 보육과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 앨리스 해먼드 샤프 선교사의 부탁으로 강경 만동여학교 교사, 공주 영명여학교 부속유치원 교사와 시간 교사 등으로 일하였다. 1925년 전재풍 목사와 결혼하여 강원도로 이주한 후에도 유아교육과 농촌계몽을 위해 노력하였다. 1934년에는 경기도 화성군 천곡교회에서 최용신(崔容信)의 뒤를 이어 강습소 교사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때 화성군 대한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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