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82
한자 李忠武公事蹟碑
이칭/별칭 이충무공기념비(李忠武公紀念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대로 1496[온양2동 56-9]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민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45년 - 이순신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98년 - 이순신 사망
건립 시기/일시 1951년 8월연표보기 - 이충무공사적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이충무공사적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이충무공사적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온양온천역 광장 -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대로 1496[온양2동 56-9]지도보기
성격 비석
양식 귀부이수
관련 인물 이순신
재질 화강석
관리자 아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2동온양온천역 광장에 있는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

[개설]

이충무공사적비(李忠武公事蹟碑)6·25전쟁 중이던 1951년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碑石)이다. 1984년 5월 17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이충무공사적비는 충청남도지사 이영진(李寧鎭)의 발기로 이충무공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며, 시민들의 성금과 국비, 도비로 1951년 8월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정인보(鄭寅普)[1893~1950]가 짓고, 김충현(金忠顯)[1921~2006]이 한글과 한문을 혼용하여 썼다.

[위치]

이충무공사적비온양온천역 광장 동쪽 가에 있다.

[형태]

이충무공사적비는 귀부이수(龜趺螭首) 형식의 비석이며, 비각 안에 건립되어 있다. 화강석으로 조성한 거북 형태의 비석 받침[귀부] 위에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웠으며, 맨 위에는 화강석으로 조각한 이수를 올려놓았다. 전체적으로 매끈하게 조각된 귀부는 비신에 비해 전체 규모가 작게 제작되었다. 귀부의 형태는 목을 앞으로 길게 내밀고, 눈가에 서기(瑞氣)가 표현된 조선 전기 양식을 모방한 작품이다. 특히 꼬리가 세 갈래인 것은 원각사비(圓覺寺碑)[1471년] 등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수는 비신에 맞게 제작되었으며, 앞뒤로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如意珠)를 쥐고 있는 형태이다. 여의주 위로 서기가 둥글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 역시 원각사비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충무공 사적비는 원각사비를 참고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비신은 4면에 모두 글씨를 새겼으며, 각 면을 3단씩 나누어 새겼다. 비신 앞면 상단에는 ‘충무이공기념비(忠武李公紀念碑)’가 전서(篆書)로 새겨져 있다.

비각은 사방 1칸씩이고 추녀가 길고 날렵하게 솟아오른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단청이 이루어졌다. ‘이충무공기념각(李忠武公紀念閣)’이라는 비각의 현판에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李始榮) 근서(謹書)’라고 부기되어 있다. 비각 주변에는 돌난간이 둘려 있다.

[의의와 평가]

이충무공사적비임진왜란 당시 목숨을 바쳐 싸워서 왜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이순신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2년에 국민 성금으로 현충사가 중건되었던 것처럼 해방 이후 다시 이순신의 사적비가 성금으로 건립되었고 전쟁 중에 완공된 것도 비문의 내용 못지않게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비문을 지은 위당 정인보는 민족운동가이자 한학자·역사학자·교육자로서 6·25전쟁 발발 한 달 뒤에 서울에서 납북되기 전에 지어 남긴 비문이라는 점과, 당시 비문으로는 흔치 않게 위인전이나 이야기처럼 쉬운 문장과 국한문 혼용체로 썼다는 점도 이충무공사적비가 갖는 색다른 의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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