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97
영어공식명칭 Kiln Site
이칭/별칭 요지,도요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판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성내리 쇠재 기와 가마터1, 2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 산33-3지도보기|산8-1지도보기
소재지 월선리 기와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 66-7 지도보기
소재지 냉정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냉정리 351-1 지도보기
소재지 서원리 기와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 238 지도보기
소재지 신수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 산29-2 지도보기
소재지 동천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산3-1 지도보기
소재지 월랑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월랑리 526 지도보기
소재지 북수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북수리 산12-1 지도보기
소재지 법곡동 자기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법곡동 161-4 지도보기
소재지 와산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와산리 62-1 지도보기
소재지 덕암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덕암리 산10-1 지도보기
소재지 오암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오암리 산37 지도보기
소재지 농은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농은리 산17 지도보기
소재지 수곡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수곡리 317 지도보기
소재지 동화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368 지도보기
소재지 유곡리 분청사기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산12-1 지도보기
소재지 마곡리 분청사기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마곡리 94-3 지도보기
소재지 종곡리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종곡리 7-1 지도보기
소재지 거산리 지루골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 184-5 지도보기
소재지 거산리 당산매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 164-3 지도보기
소재지 거산리 성골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 64 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와 자기 등을 굽던 가마의 터.

[개설]

가마는 선사시대 이래로 여러 토기, 도기, 옹기, 자기, 기와 등을 넣고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던 구조물로서 생활방식 및 터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가마터는 아직 확인되지 않으며, 조선시대에 자기나 기와를 구워내던 가마터로 확인된 22개소가 비교적 고루 분포해 있다. 그 밖에도 송악면 마곡리 분청사기 가마터 등 체계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마터와 가마터로 추정되는 곳이 상당수 더 있다. 그러나 아산 지역의 가마터는 이미 대부분 원형을 잃었고 훼손과 지형 변형이 계속되어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아산의 가마터]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가마터는 온양6동 1개소, 영인면 3개소, 인주면 1개소, 염치읍 1개소, 음봉면 3개소, 배방읍 1개소, 도고면 4개소, 송악면 8개소 등 22개소가 있는데, 모두 조선시대의 가마터이다. 송악면에 집중된 것은 산이 많아 물과 땔감이 풍족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가마터가 있는 지형은 모두 완만하게 경사진 지형을 띠고 있어 오름식 가마[등요(登窯), 아궁이를 점토와 장대석을 이용해 축조하고 연소실 바닥을 경사지게 해 불을 때서 올리는 가마]로 추정된다. 대체로 사발과 대접, 접시 등 생활 자기류가 중심을 이루는 점에서 지역 수요를 충당하거나 민수용 자기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추정된다.

1. 성내리 쇠재 기와 가마터 1, 2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 쇠재 기와 가마터 1, 2는 조선 후기에 기와를 굽던 곳으로 성내저수지 북쪽 쇠재마을 뒤편의 남동향 골짜기와 쇠재마을에서 용수사, 백련사에 이르는 길을 따라 나오는 남향 사면 지형의 밭 경작지 일원에 있다. 주변 밭에서 불탄 흙[소토(燒土)], 기와편, 불에 탄 석재 등이 발견된다. 가마터1에서는 기와 문양은 민무늬나 빗금무늬[사선문(斜線文)]가 대부분이고 얕게 새긴 생선뼈무늬[어골문(魚骨文)]나 파도무늬[파문(波文)]가 있다. 가마터2에서는 백자편, 옹기편 등도 보인다. 기와 문양은 주로 민무늬이고 얕게 새긴 생선뼈무늬와 파도무늬가 있다.

2. 월선리 기와 가마터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 기와 가마터는 조선시대에 기와를 굽던 곳으로 월선리 배다리마을의 뒷산 자락에 자리한다. 과거 집을 짓다가 많은 기와와 불탄 흙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로서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3. 냉정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인주면 냉정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복흥골에 자리하는데, 이 일대는 점말이라고도 불린다. 주변에서 가마 벽체, 불탄 흙, 초벌구이편, 백자편 등이 발견되었다. 자기는 전체적으로 굵은 모래받침을 사용했는데 전면에 두껍게 뿌렸고 거친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등이 있고, 사발과 접시는 V자형으로 굽[그릇의 밑바닥에 붙은 나지막한 받침]을 성형하였다.

4. 서원리 기와 가마터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 기와 가마터는 조선 중기에 기와를 굽던 곳으로 기와내마을 안쪽에 자리한다. 앞으로는 기와내[와천]가 남쪽으로 흐른다. 밤나무 조성지와 민가 주변에서 기와편, 불탄 흙, 가마 벽체 등이 발견된다. 기와 문양은 주로 민무늬이고 굵은 생선뼈무늬와 가는 생선뼈무늬, 빗금무늬, 파도무늬 등이 있다. 그 밖에 조선 중·후기의 백자편도 보인다.

5. 신수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중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큰숫골마을 입구의 오른쪽 산사면에 자리하는데 도장골로도 불린다. 자기는 비교적 고른 점토와 유약, 굵은 모래받침을 사용하였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등이 있다. 사발은 안쪽에 굽보다 넓은 원심[내저원각(內底圓刻)]이 있고 대나무 모양[죽절(竹節)]으로 굽을 성형하였다. 접시나 종지는 굽을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

6. 동천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시대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시곡마을의 북쪽 골짜기에 있다. 주변에서 다량의 자기편이 발견되는데, 청백색의 백자편으로 기벽이 두껍고 굽이 낮다.

7. 월랑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음봉면 월랑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월랑저수지 서쪽의 완만한 능선 말단부에 자리한다. 자기는 공통적으로 모래받침을 사용하였고, 거친 점토와 유약을 이용하였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등이 있는데, 사발이나 접시는 V자형으로 굽을 성형하였다.

8. 북수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배방읍 북수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북사리마을의 서쪽 구릉 하단부에 자리한다. 자기는 전체적으로 모래받침을 사용하고, 고운 점토와 유약을 이용하였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대접 등이 있다. 그중 사발은 V자형 굽으로 성형하였고, 대접은 V자형이나 대나무 모양으로 굽을 성형하였다.

9. 법곡동 자기 가마터

아산시 온양6동의 법곡동 자기 가마터는 읍내동 온양향교에서 서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인 법곡동 능미마을 뒤편에 있다. 자기편과 도지미[가마에서 도기를 구울 때 도기를 놓는 받침] 등이 발견된 곳이며 이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자기류의 유약은 거칠고 점토가 투박한 편이다.

10. 와산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도고면 와산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중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지새울마을 뒷산의 사면 자락에 자리한다. 가마 벽체, 백자편, 초벌구이편, 옹기편, 불탄 흙 등이 주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자기는 굽 바닥 전면에 두껍게 모래를 깐 모래받침이 대부분이고, 일부 모래 눈받침이 보인다. 비교적 고른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고, 넓은 범위에 걸쳐 자기편 등이 보이는 점에서 여러 기가 분포한 것으로 판단된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대접 등이 있다. 그중 사발이나 접시는 V자형 굽으로 성형하였고, 대접은 V자형이 대부분이지만 대나무 모양으로 굽을 성형한 것도 있다.

11. 덕암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도고면 덕암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안삭실마을의 뒷산 사면에 자리한다. 자기는 굵은 모래받침과 투박한 기형의 백자류로 고르지 못한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제기(祭器), 옹기 등이 있다. 그중 사발이나 접시 등은 V자형으로 굽을 성형하였고, 제기는 5각의 굽으로 성형하였다.

12. 오암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도고면 오암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중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오암리 윗오리실마을 동쪽 산사면에 자리하며 사기점골이라고도 불린다. 가마의 흔적은 약 70m 거리를 두고 두 지점에 남아 있다. 하나는 농로 옆의 절토(切土)[평지나 경사면을 만들기 위하여 흙을 깎아 냄]된 곳에 가마 입구가 보이는데, 주변으로 파괴된 가마 벽체편과 함께 불탄 흙, 백자편들이 발견된다. 다른 하나는 농로 위쪽으로 있는데 가마 벽체, 불탄 흙, 초벌구이편, 백자편 등이 발견된다. 모두 모래받침과 모래 눈받침으로 포개어 구운 흔적이 굽에 남아 있고, 고른 점토와 광택이 있는 유약을 사용하였다. 접시나 대접에서는 안쪽에 굽보다 넓은 원심이 남아 있고, 전체적으로 대나무 모양의 굽이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대접 등이 있다. 그중 사발이나 대접은 V자형이나 대나무 모양으로 성형하였는데, 대접은 안쪽에 굽보다 넓은 원심을 팠다. 그리고 접시는 안쪽에 굽보다 넓은 원심을 돌리고 V자형 굽으로 성형하였다.

13. 농은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도고면 농은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농은리 논골마을에서 열멩이마을에 이르기 전의 우측 계곡 사면에 있다. 농로와 골짜기 입구의 밭 그리고 건너편 숲 등지에서 불탄 흙, 백자편 및 초벌구이편 등이 발견된다. 자기는 고운 점토와 유약, 모래받침과 함께 일부 모래 눈받침을 사용하였다. 문양은 청색 안료를 이용한 그림이나 수(壽), 복(福) 등의 글자를 그렸다. 이 외에 초엽(草葉), 잠자리, 곡선 등의 문양이 있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대접, 병, 제기 등이 있는데, 사발이나 접시는 V자형으로 굽을 성형하였다. 제기는 각이 있는 것과 원형인 것이 있다.

14. 수곡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송악면 수곡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중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수곡1리 새텃말 안쪽의 골짜기 끝에 있으며 사기장골이나 점골로 불린다. 주변에서 불에 익은 벽체와 백자편들이 발견된다. 자기는 대부분 포개구이를 위해 굽바닥에 모래를 깐 모래받침을 사용하였다. 굽이 없는 접시와 사발에는 굵은 모래를 뿌렸고, 굽이 약간 높은 접시에서는 모래 눈받침을 사용하였다. 비교적 고른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으며,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등이 있다. 사발은 V자형으로 굽을 성형하였다.

15. 동화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초·중기 백자를 굽던 곳으로 안터마을 동쪽에 있다. 일명 도은동(陶隱洞)이라 불리며 『여지도서』에 ‘도은동’ 지명이 보인다. 규모가 큰 편이며 주변에서 가마 벽체편, 백자편, 초벌구이편, 도지미 등이 발견된다. 자기는 모래받침을 사용하였고, 대부분 사발과 대접·종지가 보이며 고른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다. 일부 분청사기편이 발견된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등이 있는데, 사발 안쪽에는 굽보다 약간 넓거나 같은 원심이 있고 V자형이나 대나무 모양으로 굽을 성형하였다.

16. 유곡리 분청사기 가마터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조선 초기에 분청사기를 굽던 곳으로 사기소마을의 뒷산에 자리한다. 『여지도서』에 ‘사기소리(沙器所里)’가 기록되어 있다. 규모가 상당히 크며 일대에서 가마 벽체, 자기편, 도지미 등이 발견된다. 자기는 입자가 고운 모래받침을 사용했는데, 굽 전면에 두껍게 뿌린 것이 대부분이고 4~7군데에 밀집시킨 모래 눈받침도 있다. 고운 모래 입자나 잡물이 섞인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고, 귀얄[풀칠을 하는 거친 빗자루 같은 솔]을 이용하여 백토(白土)를 바른 귀얄 기법이 보인다. 이와 함께 백자편들도 보이고 있는데,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가마터로 판단된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대접, 항아리 등이 있다. 그중 사발은 대나무 모양으로 굽을 성형하였고, 대접은 V자형으로 성형한 것이 대부분이고 대나무 모양의 굽이 일부 보인다.

17. 마곡리 분청사기 가마터

아산시 송악면 마곡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조선 초기에 분청사기를 굽던 곳으로 마실마을 뒤편 골짜기의 돌출한 능선 말단부에 자리한다. 밭에서 분청사기편, 가마 벽체편, 포개구이한 자기편 등이 발견된다. 분청사기는 점토비짐[비짐이란 그릇을 포개어 구울 때 서로 붙지 않도록 괴는 콩알 모양의 흙뭉치를 말함]을 받침으로 사용하였고, 비교적 고른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다. 백토로 무늬를 붙여 만든 상감문(象嵌文)과 도장으로 찍은 후 백토를 메운 인화문(印花文) 등 분청사기 기법이지만 문양 깊이가 얕아지고 유약이 밀착되지 않았으며 실금[빙렬(氷裂)]이 많다. 대접, 사발, 접시 등 일반 생활자기가 중심을 이루는데, 사발이나 접시 굽은 V자형으로 성형하였다.

18. 종곡리 백자 가마터

아산시 송악면 종곡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 백자를 굽던 곳으로 북실마을 동북쪽 배후 산기슭의 밭 일원에 있다. 주변 골짜기는 백토골이라 불린다. 주변에서 가마 벽체편과 불탄 흙, 백자편, 도지미, 초벌구이편 등이 발견된다. 자기는 대체로 굵은 모래받침을 사용하였고, 비교적 고른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병, 유병(油甁), 제기 등이 있는데, 사발이나 접시 안쪽에는 굽보다 넓은 원심이 있고 V자형 굽으로 성형하였다.

19. 거산리 지루골 백자 가마터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 지루골에 남아 있는 가마터는 조선 후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사기장골이라고도 불린다. 주변에서 백자편과 초벌구이편, 도지미, 가마 벽체편 등이 넓게 발견된다. 자기는 대체로 모래받침을 사용하였고,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고르지 못한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종지, 병 등이 있다. 그중 사발이나 접시 안쪽에는 굽보다 넓은 원심이 파여 있고 V자형으로 굽을 성형하였다.

20. 거산리 당산매 백자 가마터

아산시 송악면 거산1리 당산매에 있는 가마터는 조선 후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당산매 안뜸마을 뒷산 말단부에 있다. 주변에서 가마 벽체편, 백자편, 불탄 흙 등이 보이고 현재도 백토가 나온다고 한다. 소성(燒成) 방법은 굵은 모래를 굽 전면에 깐 모래받침을 사용하였고, 고른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대접, 병 등이 있다. 대접은 V자형 굽으로 성형하였다.

21. 거산리 성골 백자 가마터

아산시 송악면 거산2리 성골에 있는 가마터는 조선 후기에 백자를 굽던 곳으로 성골마을 중앙 뒤쪽의 돌출된 남향 사면에 있다. 주변에서 백자편과 가마 벽체, 불탄 흙 등이 발견되는데 투박한 옹기편이나 토기편도 있다. 공통적으로 모래받침을 사용하였고, 투박한 편이며 고르지 못한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였다. 주요 기종으로는 사발, 접시, 대접, 제기가 있다. 대접은 V자형이나 나팔 형태로 벌어지도록 성형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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