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179
한자 仁州面
영어공식명칭 Inju-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에서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으로 개편
성격 행정구역
면적 44.98㎢
가구수 3,606가구[2019년 1월 31일 기준]
인구[남/여] 6,884명[남 3,798명, 여 3,086명][2019년 1월 31일 기준]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개설]

인주면(仁州面)은 지리적으로 아산시의 북서부에 있어 남으로는 곡교천을 사이에 두고 아산시 선장면신창면, 서쪽으로는 당진시 신평면, 우강면과 시계를 이루며, 동쪽으로 아산시 영인면, 북으로는 아산만아산호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 평택시와 접해 있는 충청남도 북단의 도계를 이루는 면이다. 12개 법정리를 관할하며 아산만삽교호를 연결하는 미곡 생산의 중심지이자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인주일반산업단지 등이 들어선 산업도시이기도 하다.

[명칭 유래]

인주면의 ‘인주(仁州)’라는 이름은 아산현(牙山縣)의 옛 명칭으로 백제 때 아술현(牙述縣)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음봉현(陰峯縣)으로 바꾸었고 고려 초에 인주라 하였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인주’라는 이름은 동쪽의 영인산(靈仁山)과 관련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또는 이곳 공세창에 40여 개 고을의 조세를 받아 쌓았는데, 그 공물이 축나지 않고 잘 관리된 것이 어질고 착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어질 ‘인(仁)’ 자를 써서 ‘인주’라 하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인주면은 본래 아산군 신흥면(新興面)에 속하여 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서면(一西面)의 6개 리와 이서면(二西面)의 3개 리, 삼서면(三西面)의 5개 리, 현내면(縣內面)의 3개 리, 천안군 돈의면(敦義面)의 2개 리를 병합하고 아산군의 고려 때 이름인 인주를 따서 인주면이라 하여 아산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하여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아산시 인주면이 되었다.

[자연환경]

인주면영인산 서쪽 기슭에서 시작하여 남으로는 곡교천, 서로는 삽교호, 북으로는 아산만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너른 평야지대로서 예로부터 농업과 어업이 발달하였다. 3면이 호수와 물길로 이어져 아산만을 통해 서해로 통하고, 뒤로는 영인산이 있어서 영인산 지맥인 신풍산, 입암산을 등지고 각 마을이 형성되었다.

[현황]

인주면의 면적은 44.98㎢이며 2019년 1월 기준 인구는 3,606가구에 총 6,884명으로 남자가 3,798명, 여자가 3,086명이다. 공세리, 모원리, 신성리, 걸매리, 밀두리, 문방리, 대음리, 금성리, 해암리, 도흥리, 관암리, 냉정리의 12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1970년대에 아산만방조제삽교천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삽교호아산호가 조성되어 쌀농사를 주로 하는 농어촌 지역이었으나, 문방리 일대에 1990년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이 들어서 연간 30만 대 규모의 중대형 승용차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가지고 있고, 걸매리에는 인주일반산업단지 조성으로 36개의 기업이 입주하여 농업과 어업 외에도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아산만방조제와 삽교호방조제가 있어 국도 34호선이 동서로, 국도 39호선이 남북을 연결하여 접근성이 좋으며, 서해선 복선전철과 제2서해안고속도로가 공사 중인 교통 요충지이다.

인주면영인산을 배산으로 바다와 하천이 3면을 에워싸고 있어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 선사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옛 부여와 고구려 땅에서 조수를 따라 내려오다 접근하기 좋은 물길을 갖추고 있어 비류백제가 정착한 미추홀[밀머리]로 추정되는 밀두리[密頭]를 중심으로 면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경국대전』에 수록된 조선 전기 전국 9개 조창 중 한 곳인 공세곶창[공진창]을 만들어 충청도 청주와 천안 등지의 세곡(稅穀)을 수납하여 한성의 경창(京倉)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케 하였다. 공세곶창은 15세기 후반 이래 아산만 일대의 유일한 조창으로서 조선시대 충청도 서부 권역의 세곡을 수납하여 한성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이 공세곶창 자리 위에 1895년 설립된 공세리성당이 있다.

[참고문헌]
  • 『신정아주지』
  • 『인주면향토지』(인주면향토지편찬위원회, 200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한국학중앙연구원(https://www.aks.ac.kr)
  • 아산시청(https://www.asan.go.kr)
  • 아산시 인주면(https://www.asan.go.kr/town/i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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