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정퇴서원에 제향되었던 문신. 강백년(姜栢年)[1603~1681]은 1627년(인조 5) 정시(庭試)[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대궐 안에서 보이던 과거] 문과에 을과(乙科) 급제 후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다. 강백년은 1690년(숙종 16)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고, 일찍이 부친의 뇌물수수 사건을 겪은 후 젊어서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온양 출신으로 용호서원에 추향되었던 문신. 강세구(姜世龜)[1632~1701]는 1678년(숙종 4)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으며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정언(正言), 수찬(修撰), 호조참의, 충청도관찰사, 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회덕[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의 용호서원(龍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진주강...
-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활동한 문신. 강주(姜籒)[1567~1651]는 형 강첨(姜籤)과 함께 이조낭관(吏曹郎官)[이조정랑(吏曹正郞)]으로 선임되어 명성이 있었으나, 억울하게 구금되어 여러 차례 고문을 받았다. 시문과 초서·예서 등 서예에 뛰어났다. 강주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고(師古), 호는 채진자(采眞子)·죽창(竹窓)이다. 은열공(殷烈公) 강...
-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활동한 문신. 강학년(姜鶴年)[1585~1647]은 초서에 뛰어났으며, 의를 내세워 선비들의 추앙을 받아 온양[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의 정퇴서원(靜退書院)과 회덕[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동]의 용호사(龍湖祠)에 배향되었다. 강학년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구(子久), 호는 복천(復泉)·자운(紫雲)이다. 은열공(...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거주하였던 문신. 권확(權鑊)[1568~1638]은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넣어도 된다고 평가받았던 권절(權節)의 후손으로 인조 대에 활약했던 학자이다. 1636년(인조 14) 벼슬에서 물러나 아산 공세리 농장에 머물렀다. 권확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중(士重), 호는 석계(石溪)이다. 할아버지는 권윤희(權胤禧), 아버...
-
조선 전기 기묘사화 때 충청남도 아산으로 유배되었으며, 인산서원에 제향되었던 문신. 기준(奇遵)[1492~1521]은 기묘명현(己卯名賢) 중 한 사람으로 조광조(趙光祖)를 위시하여 김식(金湜), 김정(金淨) 등과 함께 하옥되고 아산으로 정배(定配)[죄인을 지방이나 섬으로 보내 정해진 기간 동안 그 지역 내에서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게 하던 일]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온성[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거주하였던 문신. 남발(南橃)[1561~1646]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조선 광해군 대에 활약하였던 문신이다. 온양군 설애산(雪厓山)[현재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아래에 집을 짓고 살았다. 남발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공제(公濟), 호는 화은(華隱)이다. 조선 개국 일등공신 영의정 남재(南在)의 8세손이다. 할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출신의 문신. 맹세형(孟世衡)[1588~1656]은 고려 때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을 지낸 맹희도(孟希道)의 9세손이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맹세형의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여평(汝平), 호는 하곡(霞谷)·만은(晩隱)이다. 조선시대 명재상 맹사성(孟思誠)의 8세손으로, 사첨시정(司瞻侍正) 맹익선(...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맹주서(孟胄瑞)[1622~1679]는 현종과 숙종 대에 활약했던 문신으로, 1678년(숙종 4) 안동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푼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특진관(特進官)에 이르렀다. 맹주서의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휴징(休徵)이다. 할아버지는 맹희(孟喜)이고, 아버지는 맹세형(孟世衡)이며, 어머니는 최준(崔濬)...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박서(朴澨)[1602~1653]는 조선 17대 왕인 효종과 뜻을 같이하여 오랫동안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군사력 정비에 힘써 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박서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상지(尙之), 호는 현계(玄溪)이다. 1602년(선조 35) 온양에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는 장단부사(長湍府使) 박옹(朴顒)이며, 아버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거주하였던 의술이 뛰어난 학자. 박유연(朴由淵)은 현종 대에 활약한 학자로 아버지 박지계(朴知誡)의 영향을 받아 학문이 넓었으며, 의술(醫術)에 밝았다. 박유연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약기(躍起)이며, 호는 일재(逸齋)이다. 아버지는 승지(承旨)를 지낸 박지계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유간(李惟侃)의 딸이다....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활동한 학자. 박지계(朴知誡)[1573~1635]는 조선 후기 서인계(西人系) 예학자(禮學者)로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文廟) 배향을 주장하였으며, 권득기(權得己)와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하여 유명한 철학적 논변을 하였다. 박지계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인지(仁之), 호는 잠야(潛冶),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묘를 쓴 문신. 서문택(徐文澤)[1657~1706]은 1689년(숙종 15) 원주 유생 안전(安洤) 등이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文廟)에서 축출할 것과 송시열(宋時烈)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자 이를 반박하는 상소를 올렸다. 서문택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윤장(潤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성(徐渻)이고, 1599...
-
조선 전기 충청남도 아산에 부조묘가 건립된 무신. 심구령(沈龜齡)[1350~1413]은 조선 건국에 공헌한 무신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신성리에 부조묘(不祧廟)[불천위(不遷位)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가 건립되었다. 심구령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천석(天錫), 호는 병담(屛潭)이다. 아버지는 전농시사(典農寺事) 심승경(沈承慶)이다. 심보(...
-
조선 전기 충청남도 아산에 거주하였던 문신이자 신녕윤씨 시조. 윤자임(尹自任)[1407~1478]은 세종과 성종 대에 걸쳐 활동하였던 문신으로 신녕윤씨(新寧尹氏)의 시조(始祖)이다. 윤자임의 본관은 신녕(新寧), 자는 충부(忠父)이다. 신녕윤씨는 원래 파평윤씨(坡平尹氏)에서 분파한 성씨이다. 파평윤씨는 윤신달(尹莘達)이 시조인데, 윤신달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윤혼(尹焜)[1676~1725]은 외암(巍巖) 이간(李柬)과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관선재(觀善齋)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윤혼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회이(晦爾), 호는 천서(泉西)이다. 관찰사 윤희길(尹希吉)의 5세손이며, 참판 윤근(尹根)의 현손(玄孫)으로 윤동명(尹東明)의 아들이다. 어머...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호락논쟁에서 인물성동론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학자. 이간(李柬)[1677~1727]은 일찍부터 과거 공부를 거부하고 문장과 경전 공부에 몰두하였으며,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학문적 토론을 즐겼다. 조선 숙종 때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문하의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같은 문인인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과 벌인 이른바 호...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이단석(李端錫)[1625~1688]은 평소 언사가 준엄하여 남의 미움을 받게 되어 나주목사로 좌천되는 등 벼슬에 기복이 있었다. 가족이 궁핍을 면하지 못했다 할 정도로 청백리로도 이름이 났다. 이단석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유초(有初), 호는 쌍호당(雙壺堂)이다. 종실 경명군(景明君) 이침(李忱)의 후손으로 아산시...
-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학자. 이덕민(李德敏)[1543~1618]은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었던 인산서원(仁山書院)에 배향된 향현(鄕賢)이다. 이덕민의 본관은 용인(龍仁)이고, 자는 계도(季道), 호는 송파(松坡)이다. 할아버지 이홍간(李弘幹)은 『기묘당적(己卯黨籍)』에 올랐으며, 아버지 이영성(李永成)은 예조정랑(守禮曹正郞)이고,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
-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사망한 문신. 이만(李曼)[1605~1664]은 지방관으로 오래 있으면서 농사짓는 법 및 토질을 잘 가려내는 일에 탁월한 공이 있었으나 이재(理財)에 밝아 당시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시골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만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지만(志曼)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으...
-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에 유배되었던 문신. 이민구(李敏求)[1589~1670]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직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로 충청도 아산에 유배되었다가 평안도 영변으로 옮겨졌다. 문장에 뛰어나고 사부(詞賦)에 능했으며, 평생의 저술이 4,000여 권이나 되었으나 전쟁으로 인한 화재에 거의 불타버렸다. 이민구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충신 정려가 세워진 무신이자 순절자. 이봉상(李鳳祥)[1676~1728]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켜 청주를 함락하였을 때 투항을 거부하고 죽었다. 이때 비장(裨將) 홍림(洪霖), 영장(營將) 남연년(南延年)도 함께 죽었다. 당시 충청감영에 들어온 이인좌가 항복할 것을 권하였지만 충무가(忠武家)의 충의(忠義)를 내세워...
-
고려 후기 충청남도 아산의 지방관이자 문신. 이성(李晟)[1251~1325]은 검소하고 허식이 없었으며, 젊어서부터 학업에 열중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지 학자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고 하며, 사람들은 이성을 ‘오경사(五經笥)’[오경에 능통한 사람]라고 불렀다. 이성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이성은 20세 전에 과거에 급제하여 온수...
-
고려 후기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에 은거한 아산이씨의 입향조. 이옹(李邕)은 고려 말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좌상(左相)으로 불렀으나 아산의 석교(石橋)[현재 둔포면 석곡리]에 은거하였다. 이옹의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조은(釣隱)이다. 이옹은 아산 지역 아산이씨(牙山李氏)의 입향조(入鄕祖)이다. 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무신. 이인수(李仁秀)[1737~1813]는 강직한 품성으로 1803년(순조 3) 총융사(摠戎使)로 있을 때 부하 장교가 좌의정 서용보(徐龍輔)의 체모를 손상시킨 사건으로 추고(推考)를 당하려 하자 이에 항의하여 다투다가 파직되기도 하였다. 이인수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성빈(聖賓)이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출신의 문신. 이정운(李鼎運)[1743~1801]은 아산 신창 출신으로 1781년(정조 5) 홍충도(洪忠道)[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 홍충도의 실정을 적나라하게 적발하였으며, 글을 잘 써서 명성이 높았다. 이정운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저(共著), 호는 오사(五沙)이다. 이제상(李濟相)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춘정(李...
-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이제형(李齊衡)[1605~1663]은 1658년(효종 9)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있을 때 윤선도(尹善道)가 올린 상소의 잘못된 점을 일일이 지적하여 명백하게 분별할 것을 효종에게 아뢰고, 이어서 윤선도의 관직을 삭탈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을 주청하기도 할 만큼 강직하였다. 이제형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옥(...
-
조선 전기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아산현감을 지낸 학자이자 문신. 이지함(李之菡)[1517~1578]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학문을 이어받았고, 당대에 율곡(栗谷) 이이(李珥), 우계(牛溪) 성혼(成渾), 송강(松江) 정철(鄭澈) 등과 교유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키워냈던 정통 유학자이다. 1578년(선조 11) 아산현감으로 재임 시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일정한...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이한일(李漢一)[1723~1791]은 1773년(영조 49) 과거 시험장의 질서를 단속하는 금란관(禁亂官)을 파면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처리하였다. 이한일이 쓴 방화산 산신제 축문(祝文)이 최근까지 전해져서 쓰였다고 한다. 이한일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중협(仲協)이다. 염치읍 백암리 출신으로 이석상(李錫祥)의...
-
조선 중기 충무공 이순신의 장남이자 무신. 이회(李薈)[1567~1625]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전쟁에 참가하였다. 뚜렷한 공로는 세우지 못했지만 숨은 공로가 인정되었고, 이순신이 2품직에 승진하면서 국법에 따라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음]를 통해 임실현감에 제수되었다. 이회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임징하(任徵夏)[1687~1730]는 숙종, 경종, 영조 때의 노론(老論) 문신 관료이며, 정미환국(丁未換局) 이후 역모로 몰려 옥사하였다. 임징하의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능(聖能), 호는 서재(西齋)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조할아버지 사예(司藝) 임희지(任羲之) 때 아산 지역으로 들...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지사. 임창(任敞)[1652~1723]은 숙종의 계비(繼妃)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되고 처형당한 재야 선비이다. 임창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 출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회이(晦而), 호는 강개옹(慷慨翁)이다. 증조할아버지 사예(司藝) 임희지(任羲之) 때 아산으로 들어왔고, 할...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19세기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많은 관직들을 사양하고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하였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계승하여 송시열의 제자인 간재(艮齋) 전우(田愚)에게 전수하였다. 강제(剛齋) 송치규(宋穉圭),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등의 문인이...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임형(任泂)[1660~1721]은 숙종, 경종 때 벼슬을 지낸 노론(老論) 문신 관료로 사관(史官)을 거쳐 전적(典籍), 좌랑(佐郞), 장령(掌令), 정언(正言), 집의(執義) 등을 지냈다. 벼슬에 있는 동안 1722년(경종 2) 임인무옥(壬寅誣獄) 때 처형당한 사촌 형 임창(任廠)의 일로 공격받은 일이 많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모...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활동한 문인. 임홍량(任弘亮)[1634~1707]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성리학을 존숭하고 따랐으며, 신창향교가 이건한 후 상량문을 지었다. 임홍량의 「신창향교이건상량문(新昌鄕校移建上樑文)」이 문집 『폐추유고(敝帚遺稿)』에 전한다. 또한 아산의 사마소(司馬所)[지방의 생원·진사들이 각 고을에 설립한 자체 협의기구]를 건립하였던 사실이 『...
-
조선 후기 충청도 아산 출신의 문신. 임홍망(任弘望)[1635~1715]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송시열 문하의 여러 학자들과 교유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불의에 굴하는 일이 없었다. 송시열의 문집 『송자대전(宋子大全)』에 송시열 사후 임홍망이 아산에서 상여꾼 수십 명을 데리고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조문...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문신이자 학자. 정두경(鄭斗卿)[1597~1673]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문인으로 가학(家學)이었던 도가사상(道家思想)에 바탕을 둔 경세가이며 뛰어난 시인이었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차천로(車天輅), 민사성(閔師聖), 공희성(孔希聖), 이진행(李震行), 정운붕(鄭雲鵬), 강취무(姜就武) 등과 함...
-
조선 후기 온양군수를 지낸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은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와 포저(浦渚) 조익(趙翼)에게 배웠고, 인조와 효종 대에 걸쳐 온양군수를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했으며,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아산 도산서원(道山書院)과 예산 회암서원(晦庵書院)에 모셔졌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
조신 후기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거주하였던 문신이자, 조선 제24대 왕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의 아버지. 조만영(趙萬永)[1776~1846]은 왕실의 외척이라는 지위를 배경으로 주로 병권을 담당하면서 풍양조씨(豊壤趙氏) 가문이 중앙정치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하여 세도정치의 한 축을 이루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조만영의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
조선 중·후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학문을 이끈 대표적인 성리학자. 조상우(趙相禹)[1582~1657]는 일생을 온양에 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효행으로 이름이 났다. 정퇴서원(靜退書院)을 세워 아산 지역의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조상우의 본관은 양주(楊洲), 자는 하경(夏卿), 호는 시암(時庵), 초명은 학성(學聖)이다. 온양 매곡촌(梅谷村)[현재...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조이병(趙爾炳)[1634~1683]은 현종과 숙종 대에 걸쳐 관료를 지냈으며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조이병의 본관은 양주(楊洲), 자는 경장(景章)이다. 온양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정(副司正) 조눌(趙訥)이고, 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처옹(處翁) 조지유(趙之柔)이며, 아버지는 설화산 기슭에 정퇴서원(靜退書...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조이숙(趙爾䎘)[1616~1660]은 아버지 시암(時庵) 조상우(趙相禹)와 함께 효자 정려(旌閭)을 받았으며, 회덕현감으로 재직 시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녹봉을 내어 먹을 것을 제공하는 등 청백(淸白)하였다. 조이숙의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경휘(景煇)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눌(趙訥)이고, 할아버지는 조지유(趙之柔)이...
-
조선 중기 대동법 실시를 주도하였던 학자이자 문신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의 풍양조씨 입향조. 조익(趙翼)[1579~1655]은 김육(金堉)과 함께 대동법을 확장, 시행하는 데 기여하였다. 풍양조씨(豐壤趙氏) 중시조(中始祖) 평장사공(平章事公) 조신혁(趙臣赫)의 10세손으로 도고면의 풍양조씨 입향조(入鄕祖)이다. 조익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비경(飛卿)...
-
조선 후기 충청도 아산 지역에 학당을 지은 문인. 조태만(趙泰萬)[1672~1727]은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에게 수학하였으며, 아산 지역에 응조당(應潮堂)이란 학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조태만의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제박(濟博), 호는 고박재(古朴齋)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 조가석(趙嘉錫)이며, 어머니는 윤이명(尹以明)의 딸 남원윤씨(南原尹氏)...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허옥(許沃)[1680~1744]은 주로 사간원과 사헌부의 관리로 지내면서 왕실의 재용(財用) 절약, 궁궐 소속 관리들의 횡포를 비판하였다. 허옥의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계중(啓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허감(許橄)이고, 할아버지는 허집(許緝)이다. 아버지는 양천허씨(陽川許氏) 아산 입향조(入鄕祖) 허린(許璘)이며, 어...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활동하였던 문신. 홍만조(洪萬朝)[1645~1725]는 충청도관찰사를 비롯하여 여러 관직을 지낸 문신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있는 자은영당(自隱影堂)에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홍만조가 1719년(숙종 45)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던 당시의 모습을 그린 『기사계첩(耆社契帖)』은 국보 제325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만조의...
-
조선 후기 학자이자 문신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의 풍산홍씨 입향조. 홍중징(洪重徵)[1682~1761]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들어와 풍산홍씨(豊山洪氏)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글씨와 문장이 뛰어났고 경사(經史)에 두루 능통했으며, 『주역』에 조예가 깊었다. 홍중징의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初名)은 중흠(重欽), 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