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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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漢一 |
영어공식명칭 | Lee Hanil |
이칭/별칭 | 중협(仲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병기 |
출생 시기/일시 | 1723년 - 이한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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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50년 - 이한일 문과 온양별시에 병과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70년 - 이한일 이병정 탄핵 요청 |
활동 시기/일시 | 1773년 - 이한일 금란관 삭탈 상소를 올림, 사간원대사간에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791년 - 이한일 사망 |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
묘소|단소 | 이한일 묘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덕수이씨 묘역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덕수 |
대표 관직|경력 | 사간원대사간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개설]
이한일(李漢一)[1723~1791]은 1773년(영조 49) 과거 시험장의 질서를 단속하는 금란관(禁亂官)을 파면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처리하였다. 이한일이 쓴 방화산 산신제 축문(祝文)이 최근까지 전해져서 쓰였다고 한다.
[가계]
이한일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중협(仲協)이다. 염치읍 백암리 출신으로 이석상(李錫祥)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1750년(영조 26) 문과 온양별시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를 거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많은 상소를 올려 시정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1770년(영조 46)에는 사헌부지평으로서 이병정(李秉鼎)이 글을 사서 과거를 절취했다며 권진(權禛)을 논핵한 일로 상소를 올리자 오히려 이는 이병정의 무고라며 탄핵을 요청한 일도 있었다. 또한 1773년(영조 49)에는 "이번 과장(科場)은 엄숙하지 못하여 떡, 엿, 술, 담배 따위를 현장에서 터놓고 팔았으니, 이를 감독해야 하는 금란관의 관직을 삭탈해야 한다."라고 상소하여 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같은 해 승지가 되었고, 영조가 병조참지(兵曹參知)로 있던 이한일을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제수하자 지체가 낮은데도 임금이 특별히 직임을 주었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인사들이 많았다.
[묘소]
이한일의 묘소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덕수이씨 묘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