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60
한자 李忠武公古宅
영어공식명칭 Yi Sun-sin Historic House
이칭/별칭 이충무공 옛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48[백암리 100-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선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7년 3월 18일 - 아산 이충무공 유허 사적 제155호 지정
현 소재지 이충무공 고택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48[백암리 100-1]지도보기
성격 전통가옥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이순신이 살았던 조선 전기의 가옥.

[개설]

이충무공 고택(李忠武公古宅)이순신(李舜臣)이 자란 옛 집을 말하며, 사적 제155호로 지정된 아산 이충무공 유허(牙山李忠武公遺墟)에 있다. 아산 이충무공 유허에는 이순신의 초상화를 모셔 놓은 현충사(顯忠祠)를 비롯하여 이순신이 자란 옛집, 활을 쏘며 무예를 연습하던 활터, 정문인 홍살문(紅-門), 셋째 아들 이면(李葂)의 무덤이 있다.

[위치]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 경내에 있다. 조선시대 때 이충무공 고택이 있는 곳은 백암리 북동쪽에 있는 상주방씨(尙州方氏)의 세거지였던 월곡(月谷)이었다.

[변천]

이충무공 고택은 원래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方震)의 집이었다. 이순신이 21살 때 방진의 무남독녀 상주방씨와 혼인한 뒤 이순신의 본가가 되어 이순신의 후손에게 이어졌다. 중수 관련 세부 사항은 확인되지 않는다. 안채만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대대로 종손이 살아오다가 1960년대부터 추진된 현충사 성역화 과정에서 경내의 존엄섬을 고려하여 1969년 종손이 집을 비우고 경외로 이주하였으며, 그 이후 문간채 등이 변형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형태]

이충무공 고택은 전체적으로 ‘ㅁ’ 자 형태의 전통적인 한옥 건물이다. 안채, 사랑채, 문간채, 작은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 뒤편 오른쪽 산자락에 가묘(家廟)[한 집안의 사당(祠堂)]가 있다. 안채는 ‘ㄱ’ 자 형태의 건물이며, 가운데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아랫방, 부엌, 안방이 있다. 오른쪽에는 툇마루가 있는 건넌방, 부엌이 배치되어 있다. 안채의 건넌방 부엌 아래쪽에는 아궁이를 둔 사랑채가 이어져 있다.

안채의 앞쪽에는 ‘一’ 자 형태의 긴 문간채를 두었는데, 일제강점기의 사진과 모습이 다르다. 현충사를 성역화하면서 화강석 석재로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이 새로 세워졌다. 전통적인 한옥의 문간채에서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문간채의 오른쪽[동쪽]에는 작은 문간채를 두었다. 문간채와 작은 문간채 사이에는 사랑채 마당을 통해서 가묘로 올라가는 중문을 두었다.

안채 왼쪽 건물의 밖에는 우물과 장독대가 있다. 고택 오른쪽 뒤편에는 삼문을 지나 가묘를 두었는데,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툇마루가 있는 형태이다. 가묘 중앙에는 불천위(不遷位)인 충무공 이순신의 신위(神位)가 봉안되어 있고, 1960년대부터 추진된 현충사 성역화 과정 당시 종손의 4대조까지의 신위가 함께 모셔져 있다. 불천위란 예전에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말한다. 대문 밖 서쪽 옆에는 이순신이 마시던 우물이라는 충무정(忠武井)이 있는데, 우물과 주변 모두 화강석으로 정비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충무공 고택충무공 이순신이 이웃 마을의 상주방씨와 결혼한 뒤부터 들어와 살았던 집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다.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어느 정도 처가에 거주하다 나중에 남편 집에 돌아가는 것]과 재산 상속의 풍습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남귀여가혼이란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신부 집에서 혼인생활을 시작하는 혼인 방식이다. 신랑이 신부 집에서 평생 사는 경우, 상당한 시일이 흐른 후에 부인과 함께 본가로 돌아가거나 분가해 나가는 경우 등 다양한 거주형태가 나타난다.

이순신『난중일기』에서 상주방씨와 결혼한 뒤부터 들어와 살았던 집을 본가라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다 들러 기다리던 어머니를 유해로 맞아 빈소를 차린 곳이기도 하고, 이순신 자신이 순국한 뒤 유해를 이곳에 옮겨 모셨다가 이듬해 장례를 치렀던 곳이기도 하다. 이충무공 고택이순신과 관련하여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아산시의 소중한 유적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