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15
한자 佛說大報父母恩重經(諺解)木板
영어공식명칭 Woodblocks of Bulseol Daebo Bumo Eunjunggyeong(Korean Translation) in Sesimsa Temple
이칭/별칭 신심사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0]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용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563년연표보기 -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 판각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8월 10일 -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7년 12월 26일 -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해제
문화재 해지 일시 2017년 12월 26일연표보기 -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 보물 제1960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 보물 재지정
현 소장처 세심사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0]지도보기
성격 목판
재질 목재
크기(높이,길이,너비) 45.8㎝[가로]|19.3㎝[세로]
소유자 세심사
관리자 세심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세심사에 있는 조선 전기 목판.

[개설]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佛說大報父母恩重經諺解木板)세심사(洗心寺)에서 1563년(명종 18)에 판각(板刻)된 목판(木板)[책판]이다. 1545년(인종 원년)에 오응성(吳應星)이 『불설대보부모은중경』[부모은중경 또는 은중경]을 언해한, 즉 한글로 번역한 경전을 모본(模本)으로 제작한 것이다. 중국에서 동아시아의 윤리 덕목인 효도·효행에 맞추어 형성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우리나라에서 널리 퍼져 80여 종 이상의 판본이 알려져 있다. 그중 한글로 번역된 판본도 30여 종이나 되며, 세심사에서 제작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언해본 부모은중경 목판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다른 언해본 목판과 구분하기 위해 ‘신심사(神心寺)판’, ‘세심사판’이라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신심사’였던 것을 1968년에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心堂)’이라는 부도(浮屠)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

[형태]

세심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은 시주질(施主秩)을 포함하여 전체 14판 중 1판이 결실되고 총 13판 25장이 남아 있다. 목판의 각 면에 1장씩 새겨져 하나의 목판에 총 2장씩 판각되었으며, 목판의 크기는 평균 세로 19.3㎝, 가로 45.8㎝이다. 실제 책의 판면은 세로 18.2㎝, 가로 29.2㎝로 구성되었으며, 10행에 18자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판의 중심에는 부모은중경을 뜻하는 ‘은(恩)’ 자가 새겨져 있으며, 경전의 내용에 따라 변상(變相)[경전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린 그림]이 삽도(揷圖) 형태로 배치되었다. 각 목판의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나 부분적으로 균열이나 마구리[목판의 양옆에 끼우는 두 개의 틀]가 결손된 판이 있다.

[특징]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에는 번역자 오응성의 발원문이 누락되어 있다. 『부모은중경』은 국가적 형태의 간행보다는 민간의 시주를 받아 목판을 조성한 사례가 많은데, 세심사판 역시 1563년(명종 18) 비구(比丘) 성회(性會)가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화주(化主)가 되어 판각하고 70부를 인출하여 배포하였다는 간행 기록이 남아 있어 비슷한 사례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아산시 세심사에 있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은 2002년 8월 1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되었다가, 현존하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언해본 목판 중에서 가장 시기가 이른 것으로 가치를 평가받아 2017년 12월 26일 보물 제196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목판의 간행 기록에 조선 중기의 승려 보우(普雨)[1509~1565]와 관련된 기록이 있어 당시 세심사에서 상당한 규모의 불사를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규모 불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아산 지역의 불교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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