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19
한자 洗心寺多層塔
영어공식명칭 Multi-story Pagoda of Sesimsa Temple
이칭/별칭 세심사 구층석탑,신심사 다층탑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0]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조원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고려시대 - 세심사다층탑 건립
복원 시기/일시 1956년 - 세심사다층탑 몸돌과 상륜부 보완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세심사다층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세심사다층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세심사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0]지도보기
성격 석탑
양식 다층석탑
재질 석재[점판암, 화강암]
크기(높이) 전체 높이 390㎝
소유자 세심사
관리자 세심사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세심사에 있는 몸돌이 여러 층으로 된 고려시대 탑.

[개설]

세심사다층탑은 보기 드물게 청석[점판암]으로 조성한 9층 석탑이며,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에 있는 세심사는 백제 때 창건해 654년(선덕여왕 14)에 자장(慈藏)이 중창하였다고 전해지지만 근거 자료는 없다. 절 마당에 있는 세심사다층탑으로 보아 늦어도 고려시대부터는 존속되어 온 것으로 본다. 세심사는 1956년에 지금의 이름인 ‘세심사’로 바꾸기 전까지는 ‘신심사(神心寺)’라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세심사다층탑은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성 당시의 본래 모습과 이후의 변천 과정은 파악되지 않는다. 세심사를 새롭게 정비하기 시작한 1956년 당시에는 지붕돌[옥개석]만 있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의성의 대곡사에는 몸돌[탑신]이 없고 지붕돌만 겹쳐 있는 청석[점판암] 석탑의 사례가 있어서 참고가 된다. 세심사다층탑은 승려 일타(日陀)와 도견(道堅)의 도움을 받아 승려 법련(法蓮)이 보령에서 석재를 구해 와서 몸돌과 상륜부를 보완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위치]

세심사다층탑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0번지에 있다. 영인산의 남서쪽 중턱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세심사의 대웅전 앞, 절 마당 가운데에 세심사다층탑이 서 있다.

[형태]

세심사다층탑은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높이가 390㎝이다. 주 재료로 청석을 사용하였으나 기단부는 화강석과 청석으로 만들어졌다. 3단의 화강석을 들여 쌓고 그 위에 청석의 탑재석을 올려 놓았으나 여느 석탑의 기단부와는 다소 이질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탑신부 바로 아래의 받침돌[기단석]에는 연꽃 무늬가 앙련과 복련으로 간판과 더불어 양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지붕돌과 몸돌이 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의 모서리에는 우주가 조각되어 있다. 면석에는 불상이나 문비 등이 조각되지 않아 단순함을 보여 주고 있다. 지붕의 층급 받침은 2단으로 만들어졌으며, 낙수면의 경사도는 급한 편이다. 풍탁공(風鐸孔)[풍탁을 달기 위해 석탑의 지붕돌 귀에 뚫어 놓은 구멍]이 없는 것으로 보아 풍탁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상륜부에는 복발 위에 원형의 점판암이 상하로 겹쳐 있고, 최상단에는 원형의 보주가 올려져 있다. 기단부가 높고 지붕돌과 몸돌의 폭이 좁아 전체적으로 날렵한 모습이다.

[의의와 평가]

세심사다층탑은 주로 청석을 이용하여 조성한 고려시대의 다층석탑이다. 청석탑은 주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탑이며 전국적으로 10여 기만 전해진다. 대부분 경상도 지역에 분포하며 인근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드문 석탑이다. 세심사다층탑은 아산 지역에서 청석탑의 특징과 함께 고려시대에 불교 문화가 다양하게 발달하였음을 말해 주는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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