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리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72
한자 葛梅里遺蹟
영어공식명칭 Remains in Galmae-ri
이칭/별칭 아산 갈매리 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갈매리 508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이판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7월~2004년 10월 - 공주대학교 박물관 갈매리유적Ⅰ구역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7월~2005년 1월 - 충청남도역사문화원[지금의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갈매리유적 Ⅱ구역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7월~2005년 8월 -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지금의 고고환경연구소] 갈매리유적 Ⅲ구역 발굴 조사
현 소재지 갈매리유적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갈매리 508 지도보기
성격 복합 유적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갈매리에 있는 초기 국가 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위치]

갈매리유적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갈매리곡교천 변에 있다. 은수사거리에서 북수동로를 따라 남쪽으로 500m 정도 가면 배방로와 만나는 사거리가 나오고, 다시 곡교천 방향으로 배방로를 따라 500m 정도 가다 보면 배방자이아파트단지가 있는데 아파트단지 전반에 걸쳐 유적이 자리한다. 지형은 동쪽과 서쪽에 곡교천과 회룡천이 있고, 인접한 북쪽 인근에서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르며 남쪽으로는 구릉성 산지가 있다. 유적은 이렇게 산지를 배후로 하고 하천 주변에 형성된 저지대에 자리한다.

[발굴 조사 경과]

갈매리유적의 문화재 조사는 아파트 신축 계획에 따라 2003년 12월 충청남도역사문화원[지금의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의 지표조사와 2004년 1월부터 2월까지 공주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가 이루어진 후 2004년 3월부터 5월까지 충청남도역사문화원 주관으로 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발굴 조사는 모두 3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진행되었다. Ⅰ구역은 공주대학교 박물관이 2004년 7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진행하였고, Ⅱ구역은 충청남도역사문화원이 2004년 7월부터 2005년 1월까지 진행하였다. Ⅲ구역은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지금의 고고환경연구소]가 2004년 7월부터 12월 및 2005년 4월부터 8월까지 진행하였다. 그 결과 초기 국가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대규모 유적이 확인되었다.

[형태]

갈매리유적에서는 건물지, 주거지, 제철 관련 공방지, 구덩이[수혈(竪穴)], 도랑[구(溝)], 우물, 독널무덤[옹관묘(甕棺墓)] 등 모두 900기에 가까운 유구가 조사되었다. Ⅲ구역[남쪽]에는 출입구 시설을 갖춘 철자형(凸字形) 주거지와 굴립주(掘立柱)[주춧돌 없이 기둥뿌리를 뾰족하게 깎아 땅속에 박아 놓은 기둥] 건물지, 독널무덤 등이 분포한다. Ⅱ구역[중앙], Ⅲ구역[북쪽]으로는 굴립주 건물지가 집중 분포한다. 1기만이 확인된 출입 시설을 갖춘 철자형 주거지는 평면 육각형으로 길이 9.8m, 폭 7.7m이다. 내부 중앙의 불 땐 자리와 함께 출입구 반대쪽 벽에서 부뚜막 시설이 확인되었다. 벽체는 판재를 이용해 만들었고, 바닥 전면에 걸쳐 화재가 났던 흔적이 남아 있다. 남북 방향의 수로를 두고 서쪽 산지 방향으로는 굴립주 건물지가 집중한다. 일부 건물지 주변을 따라서는 정사각형[방형(方形)]이나 원형으로 도랑을 돌린 모습들이 확인되는데, 공방 시설로 판단된다. 수로는 수리 시설을 만들어 관리했으며 인접하여 나무로 틀을 짠 우물이 자리한다. 2기가 확인된 독널무덤은 입구를 맞대어 만든 합구식(合口式)으로 계란 모양의 토기[장란형토기(長卵形土器)]를 이용하였다.

[출토 유물]

갈매리유적에서 출토된 토제 유물은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초기 철기시대의 민무늬토기], 큰 항아리[대옹(大甕)], 목항아리[단경호(短頸壺)], 계란 모양의 토기, 바리 모양의 토기[발형토기(鉢形土器)], 시루, 동이, 굽다리접시[고배(高杯)], 뚜껑접시[개배(蓋杯)], 세발토기[삼족토기(三足土器)], 송풍관(松風管), 아궁이 틀, 원통형토기(圓筒形土器), 기와 등이 있다. 금속제 유물로는 도끼, 낫, 손칼 및 다량의 철 부스러기나 쇠찌끼[철재(鐵滓)] 등 철기류 및 말 모양의 청동제 띠고리[청동마형대구(靑銅馬形帶鉤)]가 있다. 수로 등에서는 다양한 목제 유물도 출토되었다. 종류로는 공구류, 농기구류, 복식구류, 식사 도구류, 용기류, 건축 부재 등이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망치, 자귀 자루, 절굿공이, 괭이, 나막신 등이 있다. 그 밖에 숫돌이나 옥 등도 출토되었다.

[현황]

갈매리유적은 2007년 준공된 배방자이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고, 다만 유적 발굴 조사 보고서를 통해 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갈매리유적은 초기 국가 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시기를 중심으로 점유되었던 유적이다. 대부분 인위적인 구덩이 모양의 집터[수혈유구(竪穴遺構)]나 건물지가 분포하며, Ⅰ지역에서는 출입 시설을 갖춘 주거지와 함께 주변에 도랑을 돌린 건물지가 확인되고 있는데 제철 관련 공방지로 판단한다. 이에 따라 단순히 대규모 생활 유적보다는 생산이나 유통과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된다. 향후 인접한 북수리유적이나 북수리고분군 등과의 비교 검토를 통한다면 곡교천을 중심으로 배방읍탕정면 일대에 생산, 유통, 저장, 생활, 묘역 등 성격에 따른 당시의 공간 활용 양상과 마한에서 백제로의 변화 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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