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94
한자 厲壇
영어공식명칭 Yeoda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강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토석단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에도 위치해 1년에 3차례씩 돌림병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여러 신에게 여제를 지내던 제단.

[개설]

여단(厲壇)은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해 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을 국가나 지방의 군현에서 제사를 지내주던 토석단(土石壇)을 말한다.

[위치]

조선시대 아산현, 신창현, 온수현[온양군으로 승격]에는 각각 여단이 있었다. 조선 전기의 자료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이 나타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온양은 읍의 북쪽, 신창은 현의 북쪽, 아산은 현의 북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온양 관아의 북쪽 2리[약 0.8㎞], 신창 관아의 북쪽 1리[약 400m], 아산 관아의 북쪽"이라고 『신증동국여지승람』보다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30년대에 편찬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단묘조(壇廟條)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그 이전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외에 정확한 기록이나 고증이 없어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변천]

여단 제도는 1401년(태종 1)에 좌명공신(佐命功臣) 권근(權近)의 주청(奏請)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서울 북교(北郊)에 여단을 쌓고 여귀에게 제사를 지낸 데서 비롯되었다. 그 뒤 각 주현(州縣)에 명하여 여단을 만들어 여제(厲祭)를 지내도록 하였다. 여제는 3일 전에 성황당에서 발고제(發告祭)[성황신(城隍神)에게 여제의 거행을 알리는 의례]를 지낸 뒤에 본제를 지내도록 규정하였다. 여단에는 여귀의 신좌(神座)를 단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좌우로 나열한다. 제사는 1년에 세 차례 지낸다. 지방에 특별한 괴변이 일어나거나 큰 전투가 있어 사람이 많이 죽은 곳에는 정례에 구애하지 않고 수시로 제관을 보내서 소사(小祀)로 지낸 기록도 보인다.

1819년(순조 19)에 간행된 『신정아주지(新定牙州誌)』를 보면, 충청도 아산 지역에서는 현 북쪽에 있는 여단에서의 여제는 봄에는 청명일, 7월 백중일, 겨울에는 10월 초하루 등으로 1년에 3차례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현의 동남쪽에 있는 성황단(城隍壇)에서의 성황제(城隍祭)는 봄, 가을, 겨울 각각 3차례 지내는 여제의 3일 전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는 여단의 위치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었던 3개 군현에 사직단(社稷壇), 문묘(文廟), 성황단, 여단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지만 현재에는 위치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이다. 군현의 국가 중요 제사처에 대한 추후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