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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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 이후부터 고려 멸망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에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는 3개 군현이 있었다. 인주(仁州), 온수군(溫水郡), 신창현(新昌縣)이 그것이다. 지금의 아산시 중심을 통과하는 곡교천을 기준으로 이북에 인주가 있었고, 이남 동편에 온수군, 서편에 신창현이 있었다. 3개 군현은 고려시대에 천안부(天安府)[현재 충청남도 천안시]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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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고려 공양왕 대에 쌓았던 성곽. 당성(溏城)은 1391년(공양왕 3) 천안부(天安府) 신창현(新昌縣) 서쪽 장포(獐浦)[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장곳리]에 쌓은 성이다. 당성을 쌓은 이유는 부근 주현(州縣)의 조세(租稅)를 여기에 수납해 두고서 이를 해상으로 조운(漕運)하여 수도 개경으로 보내기 위함이었다. 당성에 만호 겸 감무(萬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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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맹희도(孟希道)[1337~?]는 1365년(공민왕 14)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좌윤(漢城左尹), 전교부령(典校副令), 전교령(典校令),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등을 지냈고, 우의정에 증직(贈職)되었다. 고려 말의 두문동(杜門洞) 72인 중의 한 명으로서 1388년(우왕 14)에 관직을 버리고 온양의 금곡촌(金谷村)[현재 배방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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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 사이[한반도 중부]에 자리하며, 조차가 크고 만입의 깊이가 깊어 고대 이래로 국내외 지역과 다양한 형태로 문물이 교류되는 만.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은 충청남도 아산만은 서해안에 발달한 수많은 만 가운데 특히 만입의 깊이가 깊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만이다. 만의 입구인 충청남도 당진의 한진(漢津) 부근에서 가항종점(可航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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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문종이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온천욕을 하기 위해 행차한 일. 1082년(문종 36) 9월에 고려 제11대 왕 문종(文宗)[재위 1046~1083]이 온수군(溫水郡)[현재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온천을 이용하고자 행차하였다. 문종은 고려의 제도와 문물을 집대성한 국왕이었지만 말년에 몸이 안 좋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081년(문종 35) 10월에 문종은 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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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같은 본관과 성을 가지고 대대로 살아온 성씨. 특정 지역의 세거성씨(世居姓氏)는 어떤 가문이나 인물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세거성씨는 입향조(入鄕祖)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다. 촌락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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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조세 운송을 담당한 국영 창고. 고려시대에 전국의 조세(租稅)를 13조창(漕倉)을 통해서 거두어 수도 개경[개성]으로 옮겼다. 13조창 중 하나가 아주 하양창(牙州河陽倉)이며 아주(牙州)의 편섭포(便涉浦)에 있었다. 고려시대에 국가 운영을 위해 각 군현에서 세곡(稅穀)을 거두었다. 고려는 북방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을 13개 권역으로 나누어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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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장곳리에 있던 포구. 장포(獐浦)는 ‘노루지’를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하천이 들 가운데로 깊이 들어가 있어서 마치 노루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노루고지’라고 하였으며 점차 ‘노루지’로 변하였다. 장포는 아산 지역 관내에 있던 삽교천 유역의 포구 가운데 가장 상류에 있던 포구였다. 고려시대에는 1391년(공양왕 3)에 장포에 성을 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