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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983
한자 孝婦楊洲趙氏旌閭
영어공식명칭 Monument for Filial Daughter-in-law Yangju-Jossi[Hyobu Yangju-Jossi Jeongnyeo]
이칭/별칭 신창맹씨 정려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고불로 563-9[중리 336-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서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65년연표보기 - 효부 양주조씨 명정이 내려짐
현 소재지 효부 양주조씨 정려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고불로 563-9[중리 336-1]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효부 양주조씨의 조선 후기 정려.

[개설]

효부 양주조씨 정려(孝婦楊洲趙氏旌閭)신창맹씨 집안의 효자효부 정려 4기 중 하나이다. 효부 양주조씨는 조눌(趙訥)의 딸이며, 아들 맹세형(孟世衡)[1588~1656]으로 인해 승정원좌승지로 추증된 맹희(孟喜)의 부인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고, 신창맹씨 가문에 시집와서 배우자를 일찍 여의고도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면서 아들 맹세형을 훈육하는 데 공이 있어 1665년(현종 6) 효부 명정을 받았다.

맹자의 어머니에 비유되기도 하며, 어려서 낚시질을 좋아하는 맹세형에게 "너는 과부의 아들로 학문을 폐하고 어찌 이리 하느냐." 하며 울면서 이야기하니 맹세형이 뜻을 굳게 세우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아들 맹세형은 1623년 문과 급제 후 부사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고 봉상시정에 올랐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고 군수, 부사 등 수령으로 재임할 때 늘 검소하게 생활하며 선정을 베풀었는데 모두 어머니를 본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치]

효부 양주조씨 정려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다. 금곡초등학교 남쪽 약 100m 지점, 맹씨행단 진입로 입구 100여m 북쪽이다. 지방도 623호선[고불로] 옆에 있는 신창맹씨비림(新昌孟氏碑林) 안쪽 둔덕 위에 자리한다. 효부 양주조씨 정려는 신창맹씨 정려각 안에 있다.

[형태]

효부 양주조씨 정려가 있는 신창맹씨 정려각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초익공 양식에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장주 초석 위에 기둥을 올렸고 사면을 목재 홍살로 둘렀으며 좌우 측면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정려 건물의 길이는 10.52m, 폭은 2.3m이고 높이는 4.5m이다. 내부에는 네 개의 명정 현판이 각 칸마다 걸려 있고 각각의 현판 아래로 비석이 보인다. 비석은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정려 왼쪽부터 맹희도, 맹사성, 양주조씨, 맹흠규의 순서대로 세워져 있다.

효부 양주조씨의 명정 현판에는 ‘효부 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 맹희처 증숙부인양주조씨지려(孝婦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孟喜妻贈淑夫人楊洲趙氏之閭)’라고 쓰여 있다. 비는 현판의 아래에 있는데 방형의 대좌 위에 규형의 비신을 세우고 있다. 비신의 전면 중앙 상단에는 ‘효부(孝婦)’라 새겼고, 중앙 아랫부분에는 ‘증좌승지 맹희처 증숙부인양주조씨(贈左承旨孟喜妻贈淑夫人楊洲趙氏)’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효부 양주조씨 정려는 일찍이 홀몸이 되어서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던 양주조씨에게 내려진 효부 정려이다. 그러나 어쩌면 시부모에 대한 효행보다 아들을 잘 훈육하여 훌륭한 인물로 키워서 맹자의 어머니에 비유되었던 양주조씨에게 요즘으로 말하면 장한 어머니로 인정하고 표창한 정려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양주조씨의 행적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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