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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18
한자 牙山洗心寺僧塔群
영어공식명칭 Stupas of Sesimsa Temple, Asan
이칭/별칭 세심사 부도군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0]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천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조선시대 - 아산 세심사 승탑군 건립
현 소재지 아산 세심사 승탑군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0]지도보기
성격 승탑
양식 원당형
관련 인물 세심당|송매당
재질 화강석
크기(높이) 전체 높이-134㎝[세심사 승탑1]|100㎝[세심사 승탑2]|110㎝[세심사 승탑3]
소유자 세심사
관리자 세심사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세심사에 있는 조선시대 승탑들.

[개설]

아산 세심사 승탑군은 아산 지역에서 보기 드문 조선시대 승탑(僧塔)이다. 승탑은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일종의 무덤이며 부도(浮屠), 묘탑(墓塔)이라고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 선종[불교의 한 종파]이 유행하기 시작한 9세기 이후 많이 만들어졌다. 신라 말부터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전형적인 승탑은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인데, 아산 지역에는 팔각원당형 승탑이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간략화되면서 주로 범종과 비슷한 형태의 석종형(石鐘形) 승탑이 건립되었다. 아산 세심사 승탑군의 승탑 3기는 모두 조선시대에 건립된 승탑으로 추정되나 석종형이 아닌 원당형 승탑이다.

[건립 경위]

아산 세심사 승탑군의 승탑 3기는 모두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구체적인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승탑의 주인공인 송매당(松梅堂)과 세심당(洗心堂)이 어느 시기의 어떤 승려인지도 알 수 없다. 세심사 승탑은 산 너머 인근[남동쪽 직선거리 1㎞ 남짓한 지점,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336번지 일원 추정]에 있던 동림사(桐林寺)에서 옮겨왔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신정아주지(新定牙州誌)』[1819년]에 동림사에 승탑 2기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세심사에 특이하게 같은 ‘송매당’ 승탑이 2기 있는 점 등으로 보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만약 동림사의 승탑 2기를 옮겨왔다면 송매당 승탑 1기와 세심당 승탑이었을 것이다.

[위치]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0], 영인산 남서쪽 중턱에 위치한 세심사 경내의 대웅전 서쪽 돌계단 오른쪽 석축 위에 있다. 아산의 세심사의 승탑군은 1999년 초까지는 최근 신축한 누문에서 대략 남쪽 60m 지점인 세심사 주차장 옆 길가의 산자락을 깎아 만든 자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1950년대 후반에 절의 이름을 바꾸고 정비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승탑 3기를 그곳에 옮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형태]

아산 세심사 승탑군 3기의 승탑은 모두 지붕돌이 올려져 있고 몸돌도 범종보다는 달걀과 비슷해서 전형적 석종형 승탑과는 형태가 다르다. 원당형 승탑이 아산 세심사 승탑의 형태를 잘 드러내는 용어로 판단된다. 3기 모두 화강석으로 조성되었다.

세심사 승탑1[송매당 승탑1]은 석종형이며 화강석으로 조성되었다. 전체 높이는 134㎝이고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부는 네모의 얇은 받침돌[기단석] 1매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 배 부분이 불룩한 달걀 모습의 몸돌[탑신]과 네모진 지붕돌[옥개석]로 이루어진 탑신부가 올려져 있다. 지붕돌에는 네 내림마루가 양각되어 있으며, 지붕마루나 추녀의 경사가 완만하며 추녀의 반전도 약한 편이어서 투박한 느낌이 든다. 상륜부에는 끝이 뾰쪽한 보주 두 개가 겹친 형태를 하나의 돌로 만들어 올렸다. 몸돌 정면 가운데에 제액(題額)으로 ‘송매당(松梅堂)’ 세 글자가 세로로 음각되어 있다.

세심사 승탑2[송매당 승탑2]는 송매당 승탑1과 비슷한 형태이다. 몸돌 지름이 작아 좀 더 날렵한 모습이며 좌우 균형이 약간 안 맞는다. 지붕돌이 내림마루가 더 넓게 양각되었고 경사각이 약간 크며 조금 더 두껍게 조성되었다. 상륜부는 망실되어 원뿔 모양 비슷한 자연석을 구해 대신 올려놓았다. 세심사 승탑2[송매당 승탑2] 역시 몸돌에 세로로 ‘송매당(松梅堂)’ 세 글자를 음각하였다. 전체 높이는 100㎝이다.

세심사 승탑3은 제액이 ‘세심당(洗心堂)’이라고 새겨진 세심당 승탑이다. 원당형인 점은 다른 두 승탑과 같으나 받침돌과 지붕돌의 형태가 다르다. 사각의 받침돌 가운데 윗부분을 기둥 주춧돌처럼 둥글게 돌출시킨 특이한 형태의 받침돌 위에 배 부분이 불룩하고 약간 작은 몸돌을 올렸다. 지붕돌은 육각형이며 너비가 몸돌 지름보다 조금 큰 정도로 상당히 좁고 두께는 상대적으로 더 두껍다. 상륜부를 별개의 돌로 꾸미지 않고 지붕돌 윗부분에 다소 납작한 보주를 표현하였다. 전체 높이는 110㎝이다.

[금석문]

松梅堂(송매당)

松梅堂(송매당)

洗心堂(세심당)

[현황]

세심사에는 최근까지 모두 3기의 승탑이 남아 있었다. 그중 ‘신심사(神心寺)’였던 절 이름을 1856년에 ‘세심사(洗心寺)’로 바꿀 때 유래로 삼았던 세심당 승탑을 1998년 말경[추정]에 도난당하였다. 추가 도난을 막기 위해 1999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 분실된 세심당 승탑은 아직 행방을 알지 못한다.

[의의와 평가]

아산 세심사 승탑군의 승탑 3기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조선시대 승탑로서 팔각원당형 승탑이 간략해진 원당형이며, 조선시대 승탑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유산이다. 아산시 음봉면 연암산 동쪽 기슭의 개현사 터로 추정되는 폐사지에 유사한 형태의 승탑이 있는데 탑신부 외에는 후대의 것이어서 본래의 형태와 내력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산 세심사 승탑군의 송매당과 세심당 당호를 썼던 승려들과 관련된 사항은 확인되지 않으며, 인근 동림사에서 옮겨왔을 가능성도 있어서 원래부터 세심사에 있던 승탑인지 여부도 단정할 수 없다. 또한, 같은 이름의 승탑이 2기인 사실도 특이한데 그 사유는 알 수 없다. ‘세심사’ 이름의 유래가 되는 세심당 승탑이 분실되어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며,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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