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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14
한자 巍巖先生文集板刻
영어공식명칭 Woodblocks of Oeam Seonsaeng Munjib
이칭/별칭 외암집 목판,외암유고 목판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로 300[강당리 32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성봉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60년연표보기 - 외암선생문집 목판 판각
문화재 지정 일시 1994년 11월 4일연표보기 - 외암선생문집판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3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7년 - 외암선생문집판각 장판각 보관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외암선생문집판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장처 강당사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로 300[강당리 320]지도보기
성격 목판
재질 목재
크기(높이,길이,너비) 41.6㎝[가로]|20.0㎝[세로]
소유자 예안이씨 종중
관리자 강당사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 강당사에 있는 외암 이간의 문집을 판각한 조선 후기 목판.

[개설]

외암선생문집판각(巍巖先生文集板刻)은 조선 숙종·영조 때의 학자 외암(巍巖) 이간(李柬)[1677~1727]의 문집 『외암유고(巍巖遺稿)』를 인쇄하기 위해 만든 목판(木板)[책판] 307매를 말한다. 이간 사후에 이간의 둘째 아들인 이이병(李頤炳)이 1760년(영조 30)에 자신이 현감으로 있던 경상북도 경산현[현재 경산시]에서 판각한 것이다.

[형태]

『외암유고』는 16권 8책이다. 행과 글자 수는 반엽(半葉)[접은 뒤 책의 한 면]에 10행 20자이다. 두 줄의 테두리 선을 두른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접기 전의 광곽(匡郭)[테두리] 규격은 전곽(全郭) 41.6㎝×20.0㎝이다. 목판의 가운데인 판심(版心), 즉 책으로 만들 때 접히는 부분에 인쇄된 제목[판심제(版心題)]은 상(上) 백구(白口), 즉 별도의 테두리가 없는 판심의 맨 위쪽에 ‘외암유고’라 되어 있다. 어미(魚尾)는 상하향삼엽화문어미(上下向三葉花紋魚尾), 즉 접히는 부분인 판심의 윗부분에만 아래를 향한 세 잎 꽃무늬가 양면에 새겨져 있는 형태이다. 판심에는 맨 위부터 제목과 어미가 있고, 필요한 면에는 권수와 면수가 새겨져 있다.

총 책판 수는 307매이며 앞뒤 대부분 양면에 판각되어 있다. 각 책판의 크기는 세로가 대략 20.8~24.0㎝이고, 가로는 38.0~50.8㎝이다. 목판 양끝에는 사각의 마구리[목판의 양옆에 끼우는 두 개의 틀]가 끼워져 있다. 인쇄 후 610면으로 만든 책의 표지에는 ‘외암집(巍巖集)’이라 되어 있다.

[특징]

본문 맨 첫머리의 제목인 권수제(卷首題)가 ‘외암유고’이니 판심제와 같다. 이이병은 『외암유고』 초각(初刻) 이후 곧바로 경상북도 경산현에서 추각(追刻)을 하였다. 이때 권5의 제36판 이하에 실린 별지(別紙) 2판이 보충되었고, 권9의 「답윤서응(答尹瑞膺)」 이하는 초간본에서 잘못 편차되어 중복되거나 빠진 부분을 바로잡았고, 「답윤서응기해(答尹瑞膺己亥)」가 추가되었다.

외암선생문집판각, 즉 『외암유고』 목판은 경산현에 보관되었다가 이간이 건립하였던 관선재(觀善齋)로 옮겨졌는데 그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근래에 아산 건재고택(建齋古宅)으로 옮겼다가 1999년에 관선재를 정비하여 다시 관선재로 옮겼다. 관선재이간이 세운 외암정사(巍巖精舍) 건물의 이름이며 후대에 외암서사(巍巖書社)로 운영되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을 피해 불상을 모시고 불교 사찰인 강당사(講堂寺)로 변신하여 건물을 유지하였다. 1999년 관선재 정비 때 강당사 법당으로 쓰던 건물 자리에 목조건물을 새로 짓고 방 한 칸에 외암집판장(巍巖集板藏)을 마련하여 목판을 보관해오다가 2017년에 뒤편에 새로 장판각(藏版閣)을 건립하여 보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7세기 기호(畿湖) 노론(老論) 가운데 외암 이간과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사이에 심성론과 수양론에 대한 의견 차이로 호락논쟁(湖洛論爭)이 벌어졌다. 호락논쟁은 충청도의 호론(湖論)과 서울의 낙론(洛論)이 벌였던 성리학 논쟁을 말한다. 낙론을 대표하였던 인물이 외암 이간이며, 조선 후기 성리학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외암선생문집판각은 그러한 외암 이간 선생의 문집인 『외암유고』의 책판으로 외암 이간의 생애와 사상이 담겨 있고, 특히 낙론의 사상적 근저를 이해할 수 있는 아산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1994년 11월 4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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