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306
한자 安宅
영어공식명칭 Antaek|Safe House
이칭/별칭 무고안택,재수굿,터굿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집필자 김효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작 시기/일시 1980년대 초반 - 마을 내에서 안택 실시
성격 민간신앙|개인신앙
의례 시기/일시 정월|시월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주민들이 일 년 단위로 정월과 시월에 가정의 평안을 위해 무속에게 의뢰해 베푸는 재수굿의 일종으로, 집안의 여러 가신을 정성껏 위해 집안의 평온이 유지되기를 기원하는 굿.

[개설]

아산시의 일부 가정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이나 시월에 길일(吉日)을 택해 무속인을 불러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안택(安宅)을 베푼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가신(家神)의 신체(神體)를 봉안해 두었기에 안택을 하며 가신께 정성을 드렸다. 형편이 넉넉한 가정에서는 재수굿 차원에서 안택을 행하였고,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좋지 않으면 병굿으로 ‘터굿’을 주로 행하였다. 터굿은 집의 터를 눌러 준다는 의미에서 안택의 일종인 동시에 병굿의 성격을 띤다.

[연원 및 변천]

아산 지역의 일부 가정에서는 집안이 잘되고 재수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마다 안택을 한다. 정월이나 시월에 대주와 지주의 생기복덕을 보아 화가 닿지 않는 좋은 날로 택하는데 해일(亥日)을 ‘터주 날’이라 하여 길일로 간주한다. 정초에 일 년 신수를 보아 나쁜 액운이 끼었다면 그것을 막아낼 요량으로 터도 눌러줄 겸 안택을 행하므로 터굿이라 한다.

가을철에는 추수 후 한 해 동안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베푸는 것이라 하여 무고안택이라 한다. 아산 지역에서는 정월보다는 시월에 안택을 하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간혹 마을 내에서 안택이 베풀어졌다. 그 후로는 집이 아닌 굿당에서 굿을 하게 되었고, 필요에 따라 굿당에서 재수굿으로 안택을 베풀고 있다.

[절차]

안택은 무속인이나 경쟁이[경(經)을 읽어 주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보살 등을 불러 주관한다. 과거에는 경쟁이를 주로 불렀으나 근래에는 무속인을 부른다. 무속인이나 경쟁이는 혼자 북과 징을 치며 안택을 행한다. 안택을 앞두고는 사흘이나 일주일 이전에 대문 앞에 금줄을 드리우고 황토를 피워 부정을 막는다. 금줄에는 솔잎과 종이를 끼우며, 황토는 대문 양쪽에 세 무더기씩 모두 여섯 무더기를 놓는다. 안택을 마친 후 그 이튿날에 금줄은 거두어 태우고 황토는 쓸어 버린다.

이 기간에 식구들은 날마다 목욕재계하며, 개고기는 부정하게 여겨 먹지 않는다. 요즘은 금줄과 황토를 모두 생략하고 부정풀이로 대신한다. 이 기간에 마을에 초상이 생기면 부정한 것으로 여겨 날을 미루어 다시 택일한다. 보통 사흘이 지나면 부정이 가신다고 여기는데, 과거에는 일주일이 지나서 택일하였다. 만약 집안에서 출산하였다면 부정하지만 집안일이므로 안택은 그대로 진행한다.

제물로는 떡·불밝이쌀·술·과일·밥·국·물·부침 등을 준비한다. 성주에는 떡시루만을 올린다.

떡은 떼어다가 쌀독에 놓았다가 식구끼리만 먹는다. 떡을 찔 때는 부정이 깃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떡을 안친 후 김이 오르기 이전에 변소에서 오줌을 누면 부정하다 하여 금한다.

크게 굿을 하면 여기저기 귀신들이 그 소리를 듣고 그 집으로 모여들므로 그들을 위해 별도의 상을 마련한다. 청춘에 죽은 혼신이나 객귀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뜻에서 마당에 이들 ‘수배[객귀]’를 위해 상을 마련한다. 이 상을 ‘객귀밥’이라고도 한다. 특히 가족 중에 객사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마련한다. 수배상은 상이 아닌 키에 음식을 담아 치 끝이 대문을 향하도록 놓는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부엌에서 부정풀이를 하는 것으로 굿을 시작한다. 물이 담긴 바가지에 고춧가루·소금·재 등을 넣는데 고추는 맵기 때문에 귀신이 빨리 나가라고 넣으며, 소금은 짜서 부정이 침탈하지 못한다고 여겨 넣는다. 재는 부정이 풀어나가라는 뜻에서 넣는다. 부정경은 "눈으로 보는 것도 부정, 귀로 듣는 것도 부정, 몸대 부정도 부정이므로 모두 소멸시켜 주십시오."라고 외운다. 그런 후 부정물을 가지고 대문 밖으로 나가서 버림으로써 부정이 소멸한 것으로 간주한다. 부정물을 담았던 바가지는 집 바깥에 엎어 두었다가 이튿날에 거두어들인다. 부정풀이를 하기 이전에 제물의 뚜껑을 열면 잡것들이 먼저 먹기 때문에 부정풀이를 한 후에라야 제물의 뚜껑을 열 수 있다.

부정풀이가 끝나면 곧 주왕[조왕] 앞에서 법사가 조왕경을 읽는다. 제물은 그릇에 덜지 않고 그대로 그릇째 놓아둔다. 경문을 외운 후에는 보살이 조왕 소지부터 가족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릴 때 검게 타거나 타 올라가다 말면 그 사람을 위해서 더 많이 빌어 준다. 정월에 안택을 하였다면 소지가 안 오른 사람을 위해 홍수맥이라도 해 준다. 소지가 오르는 것이 그해 그 사람의 신수이므로 잘 지켜보았다가 처방한다.

조왕을 위한 후에는 터주로 나간다. 장독 앞에 짚을 가지런히 깔고 제물을 진설하는데, 치성의 방식은 가을떡을 해 먹을 때와 같으며 무속인의 축원이 추가된다는 점만이 다르다.

소지가 잘 오르면 그 사람의 신수가 좋을 것이라 예견한다. 소지를 올리고 난 후에는 시루 안의 꽃떡을 꺼내 들고 조금씩 떼어 사방에 뿌리거나 장독의 큰 항아리 위에 청수와 꽃떡을 함께 올려둔다. 청수는 가족들이 음복하고, 남은 것은 장독에 붓는다. 꽃떡은 거두어 두었다가 식구끼리 나누어 먹는다. 터주에 올린 떡은 조금씩 떼어 변소나 광에 놓는다. 변소는 객귀가 범접하는 것을 방지하는 곳으로 중요하므로 빠뜨리지 않고 위한다.

이어 방으로 들어가서 성주굿, 제석굿[삼신굿], 조상굿 등을 순서대로 베푼다. 성주상은 대청에 차리는데, 상 위에 떡을 시루째 올리고 그 위에 대주 밥그릇에 청수를 담아 놓고, 촛불을 밝힌다. 대주가 죽었다면 대주의 그릇을 사용하지 못하므로 다른 식구의 그릇을 사용한다. 큰 그릇에 쌀 한 말 정도를 퍼서 성주상 앞에 놓고 성주대를 꽂아 둔다. 성주를 위한 후에는 만들어 둔 성주대를 잡는다. "삼만 육천 성주 신령님네 여기 다 올해는 아무 영공 없이 안과태평하더라~!"라고 축원을 하면 성주가 내린다.

성주가 내리면 좌정하라 하고 "여기 대주 재수 좀 있겠느냐?"라고 묻는다. 재수가 있을 것 같으면 대가 흔들리고,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묵묵히 그대로 있다. 만약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어떤 방위에 가서 약을 지어 먹으면 좋겠느냐! 동방인간! 남방인가! 서방인가! 북방인가! 어느 방위인가 눈으로 본 듯이 짚어 달라!"고 성주대에 물으면 성주대가 약을 지어 먹어야 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숙인다.

제석상에는 한지를 갈고 쌀을 한 말 정도를 부어 놓는데, 이것을 ‘밑가락’이라 한다. 밑가락 위에 쌀 세 보시기를 담아 종이 고깔을 씌우고, 물도 세 그릇을 올린다. 제석은 세 명의 신령이므로, ‘삼불제석’이라 부른다. 제석굿을 간단히 한 후에 조상을 위한다. 제석은 비린 것을 싫어하므로 고기는 올리지 않으며, 밑가락은 굿을 마친 후 사흘째 되는 날에 밥을 지어 비리지 않은 반찬과 함께 먹는다.

마지막에는 마루나 방 안에 조상상을 마련한다. 조상상에는 기제사 지내듯이 제물을 마련해 올린다. 방 안에서 모시는 조상의 수대로 제물을 몫몫이 마련해 올리기도 하고, 밥과 탕만을 조상 수에 맞게 올리기도 한다. 터주에 올렸던 떡을 잘라서 조상 수에 맞추어 올리고, 남은 떡은 참여한 구경꾼을 대접한다. 초상집 음식과 달리 굿을 한 음식은 재수가 좋다고 하여 서로들 얻어먹으려고 하였다.

조상굿을 마지막으로 안택을 마친 후에는 마당에서 내전(內奠)을 한다. 내전상은 별도로 마련하는데, 떡, 나물, 숭 등을 하나의 그릇에 모둠으로 담는다. 내전상 앞에서 축원한 후 내전상의 음식과 수배상[객귀상]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서 제물을 모두 물이 담긴 바가지에 담는다. 이것을 사방에 끼얹으며 "너도 먹고 모두 먹어라. 천제수배, 칠성수배, 산신수배, 건양수배 거룩하게 먹고 가고, 지고 가거라. 진 것은 먹고 마른 것은 짊어지고 가서 실컷 먹어라!"라고 축원한다.

이렇게 내전이 마무리되면 키만 들고 돌아오는데, 부정한 것이 따라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 앞에 짚에 불을 피우고 그 위로 넘어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대와 헌 성주는 사거리로 가지고 나가 태운다.

[민속적 의미]

안택은 가족 구성원의 안녕과 집안의 평안을 돌보는 가신을 위해 베푸는 의례이다. 주업인 농업을 시작하는 정월에는 농사시루라 하고, 추수 후에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으로 올리는 가을떡의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 집안의 가신께 모처럼 정성을 다하고, 집안에 모시지 못하는 잡귀잡신까지도 대접함으로써 집안의 안정과 식구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가장 성대한 종교 의례이다.

[참고문헌]
  • 이필영 외, 「아산시의 가정신앙」(『한국인의 가정신앙』-충남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 이필영 외, 「민속」(『아산탕평 택지개발 사업지구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 충청문화재연구원·대한주택공사, 2006)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