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977
한자 忠臣李弘茂旌閭
영어공식명칭 Chungsin Lee Hong-mu Jeongnyeo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여송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56년연표보기 - 충신 이홍무 명정이 내려짐
현 소재지 충신 이홍무 정려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산57-1 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익공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아산 이충무공 유허 경내에 있는 충신 이홍무의 정려.

[개설]

이홍무(李弘茂)[1665~1728]는 이순신의 4세손으로 자는 자장(子長)이고, 덕은군(德恩君) 이광윤(李光尹)의 아들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에 조카인 충청도병마절도사 이봉상(李鳳祥)과 함께 청주에서 맞서 싸우다가 결국 반군들에 잡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다 살해되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1756년(영조 32)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충숙공(忠肅公)이란 시호를 내리며 충신 정려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또한 『정조실록』의 일부[권 25, 정조 12년 3월 2일 발췌]를 보면 "충민공(忠愍公) 이봉상(李鳳祥)의 숙부(叔父) 이홍무(李弘茂)가 무신년에 적이 충청병영(忠淸兵營)에 들어왔을 적에 꼿꼿이 서서 꿇어앉지 않고 몽둥이와 칼날이 번갈아 이르는 데도 끝내 굽히지 않고 갇힌 지 6일 만에 죽었으니, 이것이 순절(殉節)이 아니고 무엇인가. 절개와 의리가 늠름하니 그 아재비에 그 조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 포양(褒揚)되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이 대부분 그 실적을 자세히 알지 못하니, 어찌 흠사(欠事)가 아닌가. 이홍무를 포장(褒奬)할 전례(典禮)를 해조로 하여금 대신과 의논해서 품신해 처리하게 하라." 라고 적혀 있어 이홍무의 꼿꼿한 절개를 볼 수 있다.

[위치]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사적 제155호 아산 이충무공 유허 경내에 있다. 입구를 거쳐 충무문을 지나면 70여m 앞 오른쪽에 충신 이홍무 정려가 있다.

[형태]

정려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익공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기와는 청기와를 얹었다. 벽면에는 모두 홍살을 설치하였고 좌우 측면에 방풍판을 시설하였다. 충신 이홍무의 명정 현판은 정려각 정면 5칸 중 가운데 칸에 걸려 있으며 바탕은 검은색, 글씨는 흰색이다. 내용은 ‘충신 증자헌대부이조판서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 시충숙공이홍무지려-영조병자명려명정(忠臣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諡忠肅公李弘茂之閭-英祖丙子命閭命旌)’이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충신 이홍무 정려가 있는 현충사 정려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그의 후손 4명, 이른바 4충신(忠臣) 1효자(孝子)의 명정 현판이 함께 걸려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자료이다. 또한 충무공 후손으로서 자존심과 충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이홍무의 절개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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