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93
한자 朴-
영어공식명칭 Pak Anla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형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3년 10월 16일연표보기 - 박안라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박안라 사망
출생지 황해도 배천군
묘소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 산60-5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밀양
대표 경력 독립운동

[정의]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명문가인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 다섯 명을 독립운동가로 키운 여성 지사.

[가계]

박안라(朴-)[1853~192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생원 박준호의 장녀이다. 남편은 충무공 이순신의 9세손 이도희(李道熙)이며, 자식으로는 이규풍(李奎豊)이규갑(李奎甲)이 있다.

[활동 사항]

박안라는 1853년 10월 16일 박준호의 장녀로 황해도 배천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충무공 이순신의 9세손 이도희(李道熙)와 결혼하여 아산에서 살았다. 이도희는 1901년에 유교적 관점에서 여성이 갖춰야 할 윤리 지침을 담은 「직중록(直中錄)」이라는 가사를 쓰기도 했다.

1902년 이도희가 세상을 떠나자, 박안라는 집안 살림을 혼자 몸으로 떠맡았다. 남편의 영향을 받아 올바른 여성상을 모색한 박안라는 자녀교육에도 열중하였다. 1905년 이후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위태로워지자 이규풍이규갑 두 아들에게 매국노 처단 상소를 올릴 것을 지시하는가 하면, 의병 전쟁에 참여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우도록 가르쳤다. 이에 따라 장남 이규풍은 연해주로 건너가 안중근(安重根)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였고, 차남 이규갑은 홍주의병에 참가하였다. 1910년 국망(國亡) 이후 이규풍이 어머니 걱정에 집으로 돌아오자 크게 혼내 다시 독립운동 전선에 나서도록 하였다. 이규갑3·1운동 이후 집안이 걱정돼 비밀리에 보낸 사람이 꾸중을 듣고 돌아왔다고 한다.

박안라 자신도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192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망했다. 두 아들 외에 손자 이민호(李敏浩), 증손자 이길영(李吉永)까지 독립운동가로 길러낸 행적이 영인면(靈仁面) 월선리(月船里)의 오충비(五忠碑)에 기록되어 있다.

[묘소]

박안라의 묘소는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 산60-5에 있으며 행적을 기록한 오충비, 충국순의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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