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65
한자 金千鳳
영어공식명칭 Kim Cheonb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 3월 19일연표보기 - 김천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4일연표보기 - 김천봉 선장면 4·4만세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70년 10월 8일연표보기 - 김천봉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7년연표보기 - 김천봉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천봉(金千鳳)[1894~1970]은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현 아산시 선장면] 장터에서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군중을 이끌고 선장면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투석을 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였다.

[가계]

김천봉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여 전국에 전파되자 김천봉선장면 선창리 정수길(丁壽吉)[정규희(丁奎凞)], 둔포면 둔포리 서몽조(徐夢祚), 둔포면 둔포리 오상근(吳相根), 선장면 군덕리 임천근(林千根)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4월 4일 선장면 장터에 모인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에 가담하도록 연설하였고, 김천봉은 앞장서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김천봉정수길, 서몽조, 임천근, 오상근과 함께 곤봉을 휘두르며 군중을 지휘하여 오후 3시경 선장면 헌병주재소에 몰려가 창문에 투석하는 등 격렬하게 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김천봉은 1919년 9월 4일 고등법원에 상고하여 "나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기초한 의사활동으로써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70년 10월 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김천봉의 충혼을 기려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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