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58
한자 金今福
영어공식명칭 Kim Geumbok
이칭/별칭 김명준(金明俊)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9년 9월 12일연표보기 - 김금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일연표보기 - 김금복 학성면 읍내리 학성산에서 횃불 만세 시위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55년 4월 24일연표보기 - 김금복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김금복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금복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금복(金今福)[1899~1955]은 일명 김명준(金明俊)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에서 주민들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는 등 3·1운동에 참여한 독립 유공자이다.

[가계]

김금복은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 읍내리[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여 전국에 전파되자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에서는 김금복을 비롯하여 박태화(朴泰和)[박진화(朴鎭和)], 정윤흥(鄭允興), 김양순(金良順), 강순화(姜順和), 손천일(孫千日), 김원배(金元培), 승일상(承一相), 이상균(李相均), 김학삼(金學三), 김상준(金相俊), 신흥남(辛興南), 이창균(李昌均), 강복개(姜福介) 등이 주민들을 이끌고 4월 2일 밤 학성산(鶴城山)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이덕균(李悳均)이 면사무소, 주재소, 보통학교로 쳐들어가 건물을 파괴하라고 고무하였다. 박태화는 이덕균과 함께 군중을 지휘하여 신창면사무소에 이르러 돌을 던져 문짝 두 개를 부수고, 주재소에 쇄도하여 투석하여 문등(門燈)의 유리를 깨었으며, 이어 신창공립보통학교에 가 기세를 올리며 군중들과 투석하여 유리창과 문을 부수었다. 김금복은 이때 붙잡혀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자신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따른 의사 발동이며, 범죄가 아님에도 제1심 및 제2심이 언도한 유죄 판결은 부당하며 복종할 수 없는 위법인 바 이에 상고한다."고 고등법원까지 상고하며 법정 투쟁을 벌였지만 기각되었다. 1955년 4월 사망하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에 김금복의 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김금복의 충혼을 기려 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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