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전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66
한자 溫水戰鬪
영어공식명칭 The Battle of Ons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236년 8월 - 온수군에 몽골군 출몰
발생|시작 시기/일시 1236년 9월연표보기 - 몽골군 온수군 포위
종결 시기/일시 1236년 9월 - 현려 등이 중심이 되어 몽골군 격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236년 9월 이후 - 현려를 온수군 호장으로 임명
성격 대몽 항쟁
관련 인물/단체 현려

[정의]

1236년(고려 고종 23)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몽골군을 물리친 전투.

[개설]

1231년부터 몽골이 고려에 침입하기 시작하여 고려와 몽골의 전쟁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는데 아산 일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1236년 9월에 온수군에서 고려와 몽골의 전투가 벌어져 현려(玄呂) 등이 중심이 되어 몽골군을 격퇴시킨 전투가 온수전투이다.

[역사적 배경]

본래 몽골고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였으나 13세기 초에 아시아와 유럽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은 1231년부터 고려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고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적극 항쟁으로 맞섰다. 다음 해인 1232년(고종 19)에 고려 정부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며 장기전 태세에 돌입하였다. 당시 국왕은 고종이었으나 실권은 최충헌(崔忠獻)의 아들 최우(崔瑀)가 가지고 있었다.

고려는 백성들을 산성(山城)과 해도(海島)에 입보(入保)[들어가서 지킴]시키며 몽골군에 대한 항쟁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충청남도 아산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1236년 8월부터 온수군(溫水郡)에 몽골군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당시 온수군은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관내를 흐르는 곡교천의 남쪽 지대에 있었던 군현이었다. 마침내 1236년 9월에 몽골군이 온수군을 포위하였다.

[경과]

1236년 9월에 몽골군이 온수군을 에워쌌다고 한다. 아마도 온수군 관내에 있었던 어느 성을 포위했다고 추정된다. 이에 온수군 군리(郡吏) 현려 등이 성문을 열고 나가 몽골군과 싸워 2명의 목을 베었다. 또한 현려 등이 몽골군을 향해 화살을 쏘고 돌을 던지며 맞서 싸워 결국 몽골군 200여 명을 죽였다. 또한 백성들이 노획한 몽골군의 병장기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군리(郡吏)는 향리(鄕吏)라고도 하는데, 지방관청의 행정 실무를 담당했던 하급 관인을 말한다.

[결과]

1236년 온수전투는 고려의 승리였다. 고려 고종은 말하기를, "현려의 온수전투 승리는 온수군의 성황신 음덕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에 고종은 온수군 성황당 존호를 덧붙여 주고 현려를 온수군의 호장(戶長)으로 임명하였다.

[의의와 평가]

온수전투는 지방 향리가 주동이 되어 몽골군의 침략을 막아냈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전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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