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얘나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080
영어공식명칭 Gaye Naru
이칭/별칭 가야포(加野浦),가리포(加里浦)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시설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가덕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병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나루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가덕리 곡교천 하안에 있던 나루.

[개설]

가얘나루가 있던 가덕리 일대는 높이 20~40m의 낮은 구릉성 산지가 하안까지 뻗어 있는 곳이어서 포구가 발달하기에 유리한 입지였다. 하천에 가까우면서도 홍수로부터 안전했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따르면, 조선 후기 곡교천을 건너던 주요 도로는 고분다리[曲橋]를 지나거나 긔애나루[犬浦]를 지났다. 가얘나루고분다리와 긔애나루의 중간쯤에 있었으므로 조선시대 주요 도로가 통과하던 곳이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까지 가얘나루고분다리나 긔애나루에 비해 교통의 요지는 아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충청도읍지』나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 『호서읍지』[1871] 등에 가얘나루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고분다리와 긔애나루의 거리가 약 10㎞에 달했기 때문에 그 중간에서 곡교천을 넘는 나루가 있어야 했으며, 가얘나루도 그중 하나였다. 『충청도읍지』나 『여지도서』에는 가야포(加野浦)로, 『호서읍지』에는 가리포(加里浦)로 기록되어 있다.

[변천]

가얘나루는 가야리에 있던 나루인데, 가야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인근의 덕동 등 여러 마을과 합쳐져 가덕리가 되었다. 가야리는 지형이 마치 가위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즉, ‘가위 〉가얘’로 불리다가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야(佳野/加野)’로 음차되었다. 곡교천을 건너는 나루 역할을 주로 담당하다가 일제강점기인 1922년 장항선이 개통되어 인근의 오목리에 역이 설치되면서 인천항으로 유입된 일본 공산품과 신창 인근의 농산물을 교환하는 식민지형 교역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