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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959
한자 祠宇
영어공식명칭 Shrine
이칭/별칭 사당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범

[정의]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는 선조나 선현을 제향하는 장소.

[개설]

충절(忠節)이 있어 본받을 만한 선조(先祖)나 선현(先賢)의 영정(影幀)이나 신주(神主)를 모셔 두고 제향(祭享)하는 장소인 사우는 역사가 매우 깊다. 우리나라의 사우 건립은 삼국시대부터로 추정되지만, 본격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한 시점은 성리학이 보급되기 시작한 고려시대부터이다.

사우는 조선시대에 서원(書院)과 함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지방의 사림은 선현 봉사를 통한 향촌 교화와 사족 결속력 강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사우를 건립하였고, 국가에서는 이를 장려하였다. 따라서 사우는 서원과 함께 조선 중기부터 세워지다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전국적으로 수가 폭증하였다. 처음 사우에는 서원과 달리 교육적 기능이 없이 단지 충신(忠臣), 순절인(殉節人), 효자(孝子) 등 해당 지방이나 가문의 뛰어난 공덕을 가진 자를 제향하는 기능만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강당(講堂)을 갖추어 서원과 외형상 차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대인들의 인식에는 서원이 사우보다 분명 우위에 있었으므로 사우에서 서원으로 전환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았다.

[아산지역의 사우]

사우의 건립에는 대체로 3가지 주체가 있었다. 사우에 봉사되는 인물의 후손, 문인, 지역민이 그들이다. 후손이 건립의 주체가 되는 경우 대체로 종중(宗中)이 공동 출자하여 자금을 마련하였다. 종중이 건립한 사우는 그 지역에서 해당 가문의 위세를 보여 주기 위해서 건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인들에 의해 건립되는 경우에는 후학들이 스승에 대한 예를 갖춘다는 목적과 학통(學統)을 분명히 한다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지역민의 경우 사우에 제향하는 인물이 해당 지역에 유배를 오거나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경우 세웠다. 이 경우 지역의 명망 있는 인사가 주도하여 사우를 세웠기 때문에 당시 지역사회 역학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된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기록 등을 통해 확인되는 최초의 사우는 맹희도(孟希道)[1337~1423?] 사후에 후학들이 맹희도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자하사(紫霞祀)[오봉사(五峰祀)라고도 함]이다. 그 밖에는 조선 전기의 사우가 확인되지 않으며 조선 후기에는 정퇴서원에 함께 세워졌던 충효당이 있고 만전영당, 외암영당, 자은영당, 임욱 영정각 등 여러 영당이 건립되었다.

충효당(忠孝堂)은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1634년 건립되어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과 동포 맹희도, 만전 홍가신 등 7명의 선현을 배향했던 정퇴서원에 같은 시기에 별도로 세워진 사우이며, 충무공 이순신, 창암 강봉수[1543~1615], 양심당 윤현(尹俔) 등 3명이 향사되었다. 서원 철폐 때 훼철되었고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에 있는 만전영당은 정확한 건립 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며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청난공신 만전당 홍가신(洪可臣)[1541~1615]의 영정을 모신 영당이다. 사후 얼마 되지 않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만전당(晩全堂)’ 편액이 걸려 있는 영정각에서 출생일인 음력 7월 17일에 제향이 이어지고 있다.

외암영당(巍巖影堂)은 조선 후기의 학자 외암 이간(李柬)[1677~1727]이 1708년에 완공한 외암정사[관선재]가 외암 사후에 영당으로 바뀐 것인데 시기는 미상이다. 1816년에 서원 성격의 외암서사로 바뀌기 전까지 영당으로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본다. 서원 철폐 때 강당사로 바꿔서 관선재 건물은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은영당(自隱影堂)은 건립 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며 1984년 기준 약 200년 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기로소에 들었던 만퇴당(晩退堂) 홍만조(洪萬朝)[1645~1725]의 영당이며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있다. 임욱 영정각(任勗影幀閣)은 전라좌수사 등을 지낸 조선 후기 무신으로 이인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분무원종공신이 된 임욱(任勗)[1680~1736]의 영당이다. 비교적 최근인 1978년에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에 건립되었으며 임욱의 아버지 임수창과 아들 임재대 등 3대를 함께 모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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