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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04
한자 龍潭寺寺蹟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길50번길 147-20[평촌리 1-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승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46년연표보기 - 용담사 사적비 건립
현 소재지 용담사 사적비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길50번길 147-20[평촌리 1-1]지도보기
성격 비석
양식 자연석비
재질 화강석
크기(높이,너비,두께) 100㎝[높이]|60㎝[너비]
소유자 용담사
관리자 용담사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에 있는 용담사 사적을 기록한 현대 비석.

[건립 경위]

권영하가 1946년에 사찰을 세우고 이름을 ‘용담사(龍潭寺)’라 한 뒤 사찰의 내력을 적은 사적비(寺蹟碑)를 세웠다. 권영하는 어머니가 1929년부터 이어 온 암자를 물려받아 용담사를 지었다.

[위치]

용담사 사적비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1-1번지, 용담사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의 동남쪽 바로 옆에 있다. 국도 21호선 온양순환로와 국도 39호선 외암로가 교차하는 장존교차로에서 국도 39호선의 남서쪽 송악면 방향 약 100m 지점의 외암교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 제방길[마을 길]로 접어든다. 그 길로 400m 정도를 간 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약 200m 지점의 오른쪽 지하 통로를 지나 100m 정도 올라가면 용담사 경내에 이른다.

[형태]

용담사 사적비는 입자가 큰 화강석 재질의 자연석에 명문을 새긴 비석이다. 높이 100㎝, 너비 60㎝의 자연석 전면 가운데의 높이 74㎝, 너비 28㎝ 정도를 다듬어 비문을 새겼다. 규모가 작고 얼핏 보면 오래된 것처럼 보여서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조성 시기부터 같이 세워져 있던 것으로 추측하기 쉽다.

[금석문]

용담사사적비 병술중춘십오일(龍潭寺寺蹟碑丙戌仲春十五日)

산명천마사명용담야 신라애장왕삼십육년사월원효대사초창 고려광종이십칠년혜명조사중창 우금일천이백여년 병화소진이단석불일위 고계룡산사지문인권해룡영하선우발원소창 사존불상탱화육축조성후 사지연대입석가야(山名天馬寺名龍潭也新羅哀莊王三十六年四月元曉大師初創高麗光宗二十七年慧明祖師中創于今一千二百餘年兵火燒盡而但石佛一位故鷄龍山寺之門人權海龍寧夏禪于發願所創四尊佛像幁畵六軸造成后寺之年代立石可也)

[현황]

충청남도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있는 용담사는 최근에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석불 주변에 있던 민가 형태의 대웅전과 요사채를 허물고, 옛 법당 터 넓은 부지에 면모를 일신하는 법당과 요사채를 갖추었다. 석불 옆의 용담사 사적비는 전에 있던 위치에 그대로 서 있다.

[의의와 평가]

용담사 사적비에는 용담사가 신라 애장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광종 때 혜명조사가 중창하여 1,200년이 되는 사찰이며, 전쟁으로 불타 석불 1기만 남아 있는 곳에 새로 절을 세웠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내용의 신빙성은 떨어진다. 애장왕[재위 800~809]과 원효[617~686]는 시기가 다르고 속칭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논산 관촉사를 창건한 혜명대사 관련도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용담사의 내력을 과시하기 위해 원효가 창건했다고 하고, 고려 전기의 석불[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을 구실로 혜명대사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용담사 사적비 이전의 관련 자료는 전혀 확인되지 않으며, 옛 사찰의 이름도 알 수 없다. 1945년 광복 직후 각지의 절터나 석불만 남아 있던 곳을 찾아 절을 짓는 경우가 매우 많았고, 이러한 일은 충청남도 아산시에서도 여러 사례가 확인된다. 용담사 사적비는 조형미가 부족한 자연석 비이고 내용에 오류가 있다. 그러나 1946년에 권영하가 오래된 절터에 용담사라는 지금의 사찰을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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