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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73
한자 溫州衙門-東軒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 온주길 27[읍내동 37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서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71년(고종 8)연표보기 - 온주아문및동헌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73년 12월 26일연표보기 - 온주아문및동헌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3년 - 온주아문및동헌 수리 및 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온주아문및동헌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온주아문및동헌 -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 온주길 27[읍내동 370]지도보기
성격 관아 건축물
양식 익공계 팔작지붕[아문]|홑처마 팔작지붕[동헌]
정면 칸수 3칸[아문 정면]|6칸[동헌 정면]
측면 칸수 2칸[아문 측면]|2칸[[동헌 측면]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

[개설]

온주아문(溫州衙門)및동헌(東軒)은 백제 이래로 고을 관아가 있던 치소(治所)로,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 중 온주아문과 동헌이 현존하고 있다. 온양군이었음에도 ‘온주아문’이라 한 것은 온양의 격을 높여서 ‘온주’라 칭했던 것이며, 이는 백제 때부터 탕정군이었던 이곳 인근에서 백제 부흥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663년(신라 문무왕 3년)에 탕정주(湯井州)로 승격시켰던 역사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위치]

온주아문및동헌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 온양초등학교 북쪽, 연산의 남쪽 자락에 있다.

[변천]

온양군의 관아 관련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여지도서(與地圖書)』「온양군읍지」의 ‘공해(公廨)’ 조에는 동헌 10칸, 아사 23칸, 객사 37칸, 무학당 3칸, 향청 12칸 등 건물 이름과 칸수가 기록되어 있다. 각종 문은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아산현지도(牙山縣地圖)」에 온주아문과 비슷한 ‘여민루’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중반 당시 온양군 관아에 2층 문루가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에 비해 온양군 관아의 그림과 함께 명칭을 표기한 『1872년 지방지도』「온양군지도」에는 군기청, 내아, 사창, 위패신실, 작청, 장청, 책실, 형리청 등을 구체적으로 표기하였고 2층 문루 그림에 ‘문루(門樓)’라 표기하여 온주아문임을 알 수 있다. 온주아문은 흥선대원군 주도로 정부와 공공기관의 위상을 높이고 면모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1871년(고종 8)에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동헌도 비슷한 시기에 보수 또는 중건되었다고 보며, 그 결과 정비된 모습이 같은 목적에서 제작된 『1872년 지방지도』「온양군지도」에 반영된 것으로 본다.

온양군 관아는 일제의 1913년 말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온양군이 폐지된 이후 급속히 변형되었으나, 그 구체적 과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미 1908년 6월 온양공립보통학교가 객사 건물을 이용하여 개교하였던 사실은 파악되고 있다. 그 밖에는 일제강점기인 1928년부터 동헌 등이 주재소로 쓰이다가 광복 후 파출소로 이어졌으며, 1986년 온양시 승격에 따라 1988년까지 2년 동안 온주동사무소로 이용된 것이 확인된다.

[형태]

1. 온주아문

온주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아문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층의 문루 건물이다. 아래층은 삼문 형태의 통로로, 위층은 누마루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1.5m 높이의 화강석 사각 장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으며, 2층 누각의 4면에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다. 공포는 전형적인 무출목(無出目) 익공(翼工) 계통으로 구성하였으며, 기둥 사이에는 운공[구름 모양의 받침대]을 끼운 장화반(長花盤)을 가운데 3구, 양쪽에 2구씩 배치하여 주심도리(柱心道里) 장여[도리 밑에서 도리를 받치고 있는 길고 모진 나무]를 받치고 있다. 마룻보[宗樑] 위에는 파련대공(波蓮臺工)이 있으며, 합각(合閣) 밑에는 충량(衝樑)을 걸치고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화려한 단청이 이루어졌으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2. 동헌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평면이며 잘 다듬은 화강석 장대석을 한 벌 쌓아 기단을 마련한 뒤 덤벙주초[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주춧돌로 사용한 돌]를 두고 그 위에 사각의 기둥을 세웠다. 장대석 일부는 다른 건물의 것을 돌려쓴 것도 있다. 공포는 무출목 초익공이며, 보머리와 익공의 양편에는 초각을 하였고 창방(昌枋)으로 구성된 기둥 사이에는 다섯 개의 소루를 놓아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우물천장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오른쪽 5칸은 대청이고 모서리 한 칸은 방을 배치하였다. 맨 왼쪽은 두 칸 모두 방을 배치하였고, 그 오른쪽은 뒤에 두 칸 방을 배치하고 전면은 두 칸 마루를 설치하였다.

[현황]

온주아문및동헌은 온양군 관아 건물로서, 온주아문과 동헌 2동의 건물만 현존하고 있으며, 1993년에 수리 및 복원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온주아문및동헌은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기준으로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 등 3개 군현이 있었던 충청남도 아산시에는 아쉽게도 관아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신창현 관아 건물은 모두 없어졌고 아산현의 문루였던 여민루와 책실 건물, 그리고 온주아문및동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온주아문및동헌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이 조선시대 온양군의 치소였음을 보여 주며, 흥선대원군 시기의 통치체제 재정비 시책이 온양군 관아에서도 추진되었음을 알 수 있는 사료이다. 그 밖에도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 등 다양한 사항을 이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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