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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55
한자 郡縣制
이칭/별칭 군현 제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강종원

[정의]

통일신라시대에 충청남도 아산 지역을 포함하여 새로 편입된 영토와 구성원에 대한 효율적인 정비와 통합을 위해 개편한 지방 행정조직.

[개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면서 지방 행정조직을 개편하였다. 이때 전국을 몇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여기에 중앙에서 임명한 지방관을 파견해 다스렸는데, 이 제도가 군현제(郡縣制)이다. 아산 지역은 탕정군(湯井郡)·음봉현(陰峯縣)·기량현(祁梁縣) 등 1군 2현으로 편제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 행정조직은 주(州)-군(郡)-촌(村)으로 이어진 주군제(州郡制)였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면서 새로 편입된 영토와 구성원에 대한 효율적인 정비와 통합을 위해 새롭게 지방 행정조직을 개편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9 757년(경덕왕 16)에 "사벌주를 상주로 고쳐 1주 10군 30현을 거느리게 하였고, 삽량주를 양주로 고쳐 1주 1소경 12군 34현을 거느리게 하였고, 청주를 강주로 고쳐 1주 11군 27현을 거느리게 하였다. 한산주를 한주로 고쳐 1주 1소경 27군 46현을 거느리게 하였고, 수약주를 삭주로 고쳐 1주 1소경 11군 27현을 거느리게 하였으며, 웅천주를 웅주로 고쳐 1주 1소경 13군 29현을 거느리게 하였다. 하서주를 명주로 고쳐 1주 9군 25현을 거느리게 하였고, 완산주를 전주로 고쳐 1주 1소경 10군 31현을 거느리게 하였으며, 무진주를 무주로 고쳐 1주 14군 44현을 거느리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36 잡지5 지리3에 "탕정군은 본래 백제의 군이었는데, 문무왕 11년 당나라 함형 2년[671년]에 주(州)로 삼고 총관(摠管)을 두었다가 함형 12년[681년]에 주를 폐지하고 군으로 삼았다. 경덕왕이 그대로 썼는데, 지금의 온수군(溫水郡)이다. 영현(領縣)이 둘이다. 음봉현[또는 음잠(陰岑)이라고도 함]은 본래 백제 아술현(牙述縣)으로 불렸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아주(牙州)이다. 기량현은 본래 백제 굴직현(屈直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신창현(新昌縣)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신라는 당 문물의 도입과 함께 삼국통일에 따른 확대된 영토의 재편 작업을 추구하였는데, 지방 통치체제를 정비하면서 군현의 재편도 함께 진행하였다. 신문왕 대에 정비된 군현제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추진되었다. 신라는 삼국통일 전쟁을 치르면서 피폐해진 군현과 그렇지 않은 군현을 파악하였으며 전정(田丁)과 호구(戶口)가 미달했던 행정단위를 향(鄕)이나 부곡(部曲)으로 편제하였다.

신문왕 대에 정비된 지방 행정조직은 경덕왕의 한화 정책(漢化政策)[군현의 지명과 중앙 관직명을 한자화하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다시 개편이 이루어졌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757년(경덕왕 16) 12월조 및 지리지에 지방제도 개편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각 군에는 직할 현이나 영현이 존재하였으며 현은 주의 직할 현이 되거나 군의 영현으로 편제되었다. 그리고 군현에는 지방관과 관사(官司)를 두어 지방 행정을 실행하였다. 군에는 태수가 임명되었으며, 현에는 현령과 소수(少守)가 파견되었다. 이들 지방관은 해당 관할 구역의 일반 행정을 비롯해 치안, 징병, 징세권, 사법권 등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촌에는 진촌주(眞村主)와 차촌주(次村主)가 있었는데, 이들은 지방관을 도와 촌락 단위의 지방 행정에 참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면서 군현제를 실시하였다. 전국을 9개 주로 편성하면서 옛 3국에 3개 주를 균등하게 배분하였는데, 백제 지역에는 3주-2소경-37군-104현을 두었다. 이를 통해 백제 유민의 민심을 회유하고 지방 통제를 강화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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