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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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The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박경신 |
[정의]
강원도 철원군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과 유물.
[개설]
청동기시대의 특징은 민무늬토기와 청동기의 등장, 간석기의 보편적 사용, 농경사회의 일반화, 구릉 지대에 집단 취락의 형성을 들 수 있다. 또한, 고인돌과 같은 거대한 돌무덤의 축조와 선돌 등 거석문화가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었다. 강원도 철원군의 청동기 시대 유적 및 유물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많지 않으며, 구체적인 발굴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유물]
강원도 철원군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일본의 고고학자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일제 강점기에 철원군에서 채집된 것으로 전하는 간돌도끼, 간돌화살촉, 바퀴날도끼 등을 소개한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신철원중학교에서 소장 중인 간석기, 춘천시 향토사료관에 소장 중인 갈말읍 토성리 채집 간석기, 발견 매장 문화재로서 국가귀속이 이루어진 간석기 10여 점이 보고되었다.
[무덤 유적]
강원도 철원군에 분포하는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은 고인돌이 유일하다. 우선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1942년 발간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서 고인돌 16기[갈말읍 문혜리 4기, 갈말읍 지포리 11기, 갈말읍 토성리 1기]를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해방 후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가 1986년 실시한 현황 조사 과정에서는 문혜리 1기, 지포리 4기가 각각 사라진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에 비하여 토성리는 6기가 증가하여 총 15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리고 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 1995년 실시한 현황 조사에서는 토성리 5기, 문혜리 2기, 지포리 4기가 사라진 총 4기만이 잔존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한편, 2005년 실시된 철원군 종합 지표조사에서는 장흥리 추정 고인돌 1기를 포함하여 7기의 고인돌이 보고되었는데, 대부분이 원 위치를 이탈하여 발견되었다.
이와 같이 철원군의 고인돌은 지속적인 훼손을 피할 수 없었는데, 이는 경지정리 과정에서 위치가 이동되거나 훼손된 결과이다. 이 외에도 철원읍 외촌리, 군탄2리, 문혜3리, 신철원1리, 지포리, 토성리 등에서 고인돌이 보고된 바 있다.
[마을 유적]
강원도 철원군에서 조사된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은 철원 와수리 유적이 유일하다. 강원문화재연구소의 시굴 조사 과정에서 일부 청동기 시대 집자리에 대한 내부 조사가 이루어졌다. 총 4기의 청동기시대 집자리가 조사되었는데 평면형태는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이다. 출토 유물로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겹아가리단사선문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토기[口脣刻目土器], 석기, 첨두기(尖頭器), 부리모양석기 등이 있다.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대체로 청동기 시대 전기인 기원전 13세기~11세기로 편년된다. 따라서 철원군 일대에 청동기 시대 전기부터 사람들이 정주생활을 영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강원도 철원군에서는 아직까지 청동기 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마을 유적은 조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인돌이 청동기 시대 전 시기에 걸쳐 만들어진 점을 감안할 때 청동기 시대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철원군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향후 충적 대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청동기 시대 전 시기에 해당하는 마을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