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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의병. 강태건(姜泰健)[1878~1952]은 의병장 곽한일(郭漢一)과 함께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였고, 독립의군부에서도 활동하였다. 강태건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강호선(姜浩善)이다. 강태건은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으며, 장남인 강인식(姜仁植)은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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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곽창영(郭昌榮)[1878~1950]은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현 아산시 송악면]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곽창영은 1878년(고종 15) 9월 21일 아산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상민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송악면 거산리 55번지에 거주하였으며, 그 밖의 사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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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곽한일(郭漢一)[1869~1936]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출신으로 1906년(고종 43)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여 돌격장,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하였다. 종신 유배형을 받고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智島)로 유배되었으나 1912년에 풀려났다. 1913년 독립의군부에서 총무총장(總務總長)으로 활동하다가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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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서산군 대호지면 만세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권주상(權周相)[1881~1957]은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현재 당진시 대호지면]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투석하며 시위하였다. 권주상은 1881년(고종 18) 아산군 영인면 신현리 87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자세한 가계는 파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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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금복(金今福)[1899~1955]은 일명 김명준(金明俊)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에서 주민들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는 등 3·1운동에 참여한 독립 유공자이다. 김금복은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 읍내리[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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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염치읍 백암리 횃불 만세 시위 주도자. 1919년 3월 31일 밤 한연순(韓連順)과 함께 염치면[현재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芳華山) 위에 횃불을 올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김복희(金福姬)[1901~1986]의 아버지는 김윤필(金允弼), 어머니는 박씨이다. 6남매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김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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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양순(金良順)[1881~1936]은 1919년 4월 2일 밤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학성산(鶴城山) 위에서 이덕균(李悳均) 등과 함께 횃불을 올리고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양순은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 읍내리[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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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천봉(金千鳳)[1894~1970]은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현 아산시 선장면] 장터에서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군중을 이끌고 선장면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투석을 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천봉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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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6·10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남영희(南榮熙)[1905~1989]는 1926년 중앙고등보통학교[현재 중앙고등학교] 재학 시절 6·10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1927년 수원고등농림학교[현재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하여 비밀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일제에 발각되었다. 광복 후 농림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건국대학교 교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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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민병길(閔丙吉)[1884~1942]은 중국 난징[南京]으로 망명하여 한국혁명당 등 각 정당에 참여하였다.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사망 때까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민병길의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소운(蘇雲), 이명은 민경수(閔庚壽)·이소운(李蘇雲)·이군송(李君宋)이다. 충청남도 아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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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명문가인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 다섯 명을 독립운동가로 키운 여성 지사. 박안라(朴-)[1853~192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생원 박준호의 장녀이다. 남편은 충무공 이순신의 9세손 이도희(李道熙)이며, 자식으로는 이규풍(李奎豊)과 이규갑(李奎甲)이 있다. 박안라는 1853년 10월 16일 박준호의 장녀로 황해도 배천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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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응구(朴應九)[1921~1989]는 1939년 일본 규슈[九州] 나가사키현[長崎縣]에 있는 이사하야농학교[諫早農學校] 재학 중 비밀결사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비밀결사가 일제에 의해 탐지되어 조선으로 송환되었고, 1943년 5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대구형무소에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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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공주 지역에서 3·1운동을 불러일으킨 독립운동가. 박장래(朴璋來)[1899~1940]는 1919년 3월 10일 공주 지역으로 가서 영명학교(永明學校), 농업학교, 보통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가(獨立歌)」를 가르치는 등 비밀리에 시위 계획을 추진하던 중 사전에 일경에게 발각되어 피체되었다. 박장래는 아산군 송악면 거산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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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박정양은 1895년 1월 12일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현 배방읍 장재리]에서 태어났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대한통의부 국내 지부에서 활동하면서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 중 일제에 체포된 후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35년 사망하였다. 만주에 설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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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박진화(朴鎭和)[1885~1941]는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鶴城山)에서 횃불 만세 시위를 벌였고, 신창면사무소에 투석하는 등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박진화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성리 128에서 태어났으며 박태화(朴泰和)·박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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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방창근은 1885년 11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신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온양장에서 대한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태형을 받았으며 결의단(決意團)을 조직하고 비서장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963년 6월 6일 사망하였다. 방창근은 1919년 3월 14일 온양장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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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서몽조(徐夢祚)[1881~?]는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현 아산시 선장면] 장터에서 정수길(丁壽吉)[정규희(丁奎凞)], 김천봉(金千鳳), 임천근(林千根), 오상근(吳相根)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서몽조는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둔포리 198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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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서병림(徐丙林)은 충청남도 온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고, 1907년(고종 44) 10월 운강(雲岡) 이강년(李康秊) 의진(義陣)에 합류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서병림의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의병 운동 당시 거주지는 온양이었다. 1907년 7월 헤이그(Hague)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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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홍성군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성낙붕(成樂朋)[1881~1919]은 1919년 4월 4일 홍성군 내의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성낙붕은 1881년(고종 18) 11월 19일 아산군 도고면 석당리 29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석당리 295번지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가한 뒤 군자금 모집 활동과 도고면장 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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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성낙응(成樂鷹)[1914~2001]은 보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상환 등과 비밀결사 ‘반제국주의동맹반’을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성낙응은 1932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조상환, 유동태, 서승석, 신대성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반제국주의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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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친일 행적을 벌인 유생. 성낙현(成樂賢)[1868~1935]은 경학원(經學院) 충청남도 강사(講士)로 1912년부터 1935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성낙현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희성(希聖), 호는 죽사(竹似)이다. 1868년(고종 5) 아산 신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갑영(成甲永)이다. 성낙현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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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국내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 1917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충청도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성달영(成達永)[1873~1933]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백(景伯), 호는 비파헌(琵琶軒)이다. 아버지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유수공파의 22세손 성지호(成志鎬)이며, 충숙공파의 22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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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 출신으로 국내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 1913년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펼치고,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조직 당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성문영(成文永)[1887~1961]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유수공파의 성지호(成志鎬)이며, 형은 항일운동을 함께한 성달영(成達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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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의병. 성재한(成載翰)[1860~1906]은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여 운량관(運糧官)으로 활동하였으며, 1906년(고종 43) 5월 31일 홍주성(洪州城) 전투에서 분전하였으나 전사하였다. 성재한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운거(雲擧), 일명 성재평(成載平)이다. 1860년(철종 11) 2월 17일 신창현(新昌縣) 원당(元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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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손천일(孫千日)[1882~?]은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鶴城山)에서 횃불 만세 시위를 벌였고 신창공립보통학교에 투석하는 등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손천일은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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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승일상(承一相)[1889~1953]은 1919년 4월 2일 밤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학성산(鶴城山) 위에서 주민들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승일상은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 읍내리[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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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신치공(申致公)[1878~1932]은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 궁평리 안산 봉우리에서 일어난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신치공은 1878년(고종 15) 아산군 송악면 동화리 44번지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9년 3월 31일 밤 충청남도 아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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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출신 독립운동가인 남편 이규풍을 헌신적으로 도운 여성 애국지사. 오세라(吳-)[1875~1939]는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남편 이규풍(李奎豊)을 도와 항일 운동을 했다. 오세라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부사 오태근의 장녀이다. 남편은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이규풍이다. 자식으로는 아들 이민호(李敏浩)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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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항일운동가 이남규가 살해되자 시신을 지켜준 마을 주민. 유진원(兪鎭元)은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가 1906년(고종 43) 홍주의진(洪州義陣)과 연관되었다는 혐의로 일본군에 의해 연행되던 중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에서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시신을 잘 지켜주었다. 유진원은 충청남도 온양군 군내면 장존리[현재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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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윤용주(尹龍周)[1884~1949]의 아호는 현천(玄天) 또는 성첨(聖瞻), 이명은 이민하(李敏河)이다. 일찍이 대한독립의군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경성[서울]에 올라가 전협 등이 조직한 대동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대동단 활동을 통해 단원 및 자금 모집에 진력하였다. 윤용주는 일찍이 한학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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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감리교 목사. 이규갑(李奎甲)[1887~1970]은 1919년 인천 만국공원에서 개최된 국민대회에 13도 대표로 참석 후 상해로 망명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을 맡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목회자로 선교 활동과 교육사업을 하였으며, 1929년 신간회 활동에 참여한 이후 목회 활동을 계속했다. 해방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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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의병 지원 활동을 한 지방 관료. 이규남(李圭南)[1862~1907]은 아산군아(牙山郡衙) 수서기(首書記)로서 1907년(고종 44) 11월 16일 의병이 아산분파소(牙山分派所)를 습격할 때 의병과 연계하여 길 안내를 하는 등 의병 지원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압송되던 중 동생 이규찬(李圭瓚)과 함께 피살되었다. 공훈전자사료관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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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이규풍(李奎豊)[1865~1932]은 구한말 조정에서 관직에 있다가 을사늑약 후 낙향하였다. 이듬해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이범윤·안중근 등과 의병대를 조직하였으며, 성명회·권업회 결성에 참가하고 한성정부 평정관에 선출되었다. 1926년에는 만주에서 개최되는 민족혁신파대표대회에 참가하여 고려혁명당을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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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이길영(李吉永)[1928~2007]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규풍(李奎豊)[1865~1932]의 손자이며, 중국에서 활동한 이민호의 아들로 한국광복군에 참여하고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이길영의 본관은 덕수(德水), 이민호(李敏浩)[1895~1944]와 정수정의 아들이며 이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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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달용(李達鎔)[1889~1919]은 1919년 3월 18일 밤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모루[磨石隅]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달용은 1889년(고종 26) 2월 3일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현재 염치읍] 강청리 321번지에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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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러시아 연해주, 중국 만주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민호(李敏浩)[1895~1944]는 1919년 3·1운동 당시 황해도 일부 및 전라도, 충청도를 돌아다니며 청년들을 모아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22년 가족을 동반하고 러시아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다시 중국 만주(滿洲)로 들어가 신민부(新民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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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출신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 이민화(李敏華)[1898~1923]는 1917년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 교관,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 종군장교로 참가하였으며, 독립군의 북정에 참가하여 러시아 자유시사변(自由市事變) 이후 고려혁명군 장교로 활동하였다. 1923년 노령(露領)과의 국경지대인 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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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활동한 대중운동가. 1930년대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적색농민조합운동(赤色農民組合運動)에 동참하는 등 사회주의적 경향의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이선준(李銑濬)[1911~?]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본적은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현재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109번지이다. 1935년 당시에는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향산리[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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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동학농민군과 홍주의병 진압에 큰 공을 세운 문신.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당시 홍주목사(洪州牧使)로 있으면서 초토사(招討使)에 임명되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승우(李勝宇)[1841~191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치경(穉敬)이다. 1841년(헌종 7) 태어났으며 효령대군 15세손으로 종친부직장(宗親府直長)으로 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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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 1894년(고종 31) 10월 홍주성(洪州城)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동문 밖에서 참살당했다. 이신교(李信敎)[1840~189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회안대군파(懷安大君派) 17세손이다. 입향조인 13대조 이사눌(李思訥) 이후 약 400년간 세거해 온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용화리[지금의 아산시 용화동]에서 태어나고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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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사람 이규갑과 혼인한 항일 독립운동가. 이애라(李愛羅)[1894~1922]는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가해 평양경찰서에 구금되었던 독립운동가이다. 애국부인회 활동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락 책임을 맡았으며, 1921년 만주로 망명 후 국내 연락 차 입국하던 중 체포되어 고문 끝에 순국하였다. 이애라는 시종무관인 이춘식의 셋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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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대한제국군 해산에 맞서 싸운 군인. 이준영(李峻永)[1879~1907]은 1907년(고종 44) 4월 30일 대한제국군 시위보병(侍衛步兵) 제2연대 1대대에서 복무하던 중 군대 해산에 격분하여 일본군과 용감하게 싸우다 사망하였다. 이준영의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운계(雲桂)이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형인 이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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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무신으로 동학농민혁명 때 토벌을 위한 관군으로 출동하여 전라도 장성 황룡촌전투에서 전사한 인물.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 장성 월평전역(月坪戰役)[황룡촌(黃龍村) 전투]에서 동학농민군과 싸우다 패하고 전사하였다. 이학승(李學承)[1852~1894]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습(景習)이다.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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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형평사에서 활동하며 사회운동을 전개한 인권운동가. 1929년 4월 형평사(衡平社) 본부 중앙집행위원, 지방순회위원에 선임되면서 형평사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32년 11월부터 조선중앙일보 아산지국장으로도 활동하였다. 이한용(李漢容)[1904~?]은 백정(白丁) 출신으로 중류 상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충청남도 온양면 읍내리[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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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임천근(林千根)[1890~1965]은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군덕리 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임천근의 본관은 부안(扶安), 호는 도곡, 본명은 임화철(林化喆)이다. 충청남도 공주군 이천면 대동리에서 태어났으며, 1899년(고종 36) 아산군 선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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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화천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임형선(林炯善)[1921~2005]은 1921년 5월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화천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평택이며, 예산공립농업학교 재학 때 한일학생 차별반대운동을 하였다. 고향에서 농민운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일제에 다시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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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정규희(丁奎熙)[1895~1979]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 동학 지도자로서 1919년 4월 4일 아산군 선장면 군덕리 장터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정규희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수길(壽吉), 호는 규암(奎菴)이다.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서 태어났으며, 1902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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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 출신으로 국내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 1917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회원 규합과 연락,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정우풍(鄭雨豊)[1879~1956]은 1917년 7월 장두환(張斗煥)의 권유로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회원 규합과 연락 및 군자금 모집 등을 위하여 활동하다 일경에 피체되었다. 19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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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아산 일대의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였다. 정태영(丁泰榮)[1859~1922]의 본관은 나주(羅州), 본명은 정건섭(丁建燮)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대정리[현 아산시 선장면 대정리]이다. 1895년(고종 35) 부인 김태화와의 사이에서 장남 정규희(丁奎熙)[정수길(丁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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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진수린(陳壽麟)[1898~1930]은 아산금융조합에 근무 중 공금을 빼돌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탈출, 군자금으로 헌납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재산계 서기로 근무하였다. 1927년 11월 재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이 창립될 때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12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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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최병수(崔炳秀)[1876~1919]는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군덕리 장터에서 군중의 최선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경의 총격으로 숨졌다. 최병수는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대정리 123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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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화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한경석(韓慶錫)[1909~1951]은 1927년 조선학생혁명당에 가입하였다. 조선학생혁명당은 1929년에 조선학생전위동맹으로 개칭되었고, 한경석은 조직부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조선학생전위동맹은 중앙부원회를 개최하여 독서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한경석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 동조 시위에 참여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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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일제 식민정책에 반대하고 민족독립을 일깨우는 편지를 친구들에게 보내고, 일왕의 권위를 부정하는 연하장을 제작하여 일경에 체포되었다. 한명식(韓明植)[1917~1963]은 1932년 12월경부터 이선준(李銑濬)과 교류하게 되면서 이선준의 민족의식에 감화를 받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하였다.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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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한양수(韓良秀)[1876~1950]는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 궁평리 안산 봉우리에서 일어난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한양수는 1876년(고종 13) 아산군 송악면 거산리[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9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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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으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일어난 염치읍 백암리 횃불 만세 시위 주도자. 한연순(韓連順)[1896~?]은 1919년 3월 31일 밤 김복희(金福姬)와 함께 염치면 백암리 방화산(芳華山) 위에 횃불을 올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한연순은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정(南山町) 54번지[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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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연고를 두고 1930년대에 의열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홍가륵(洪加勒)[1913~1950]은 1913년 10월 19일 출생하였다.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온천리 97이다. 태어난 곳은 경기도 수원군 음덕면 남양리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기독교 감리교 목사였던 홍승하(洪承河)이며, 홍형준(洪亨俊)이 아버지이다. 홍가륵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