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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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璋來 |
영어공식명칭 | Bak Jangr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1월 3일 - 박장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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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 박장래 공주 영명학교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을 촉구함 |
몰년 시기/일시 | 1940년 4월 6일 - 박장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박장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공주 지역에서 3·1운동을 불러일으킨 독립운동가.
[개설]
박장래(朴璋來)[1899~1940]는 1919년 3월 10일 공주 지역으로 가서 영명학교(永明學校), 농업학교, 보통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가(獨立歌)」를 가르치는 등 비밀리에 시위 계획을 추진하던 중 사전에 일경에게 발각되어 피체되었다.
[가계]
박장래는 아산군 송악면 거산리 41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박장래는 1919년 2월 28일 고종의 국상(國喪)을 참관하고자 서울에 갔다가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3월 8일까지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머물면서 「독립가」를 배웠다. 박장래는 고향에 「독립가」를 전파하기로 결심하고 돌아왔지만, 아산군 송악면[현 아산시 송악면]은 인구가 적어 효과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3월 10일 공주로 갔다. 박장래는 김수철(金洙喆) 방에서 기숙하면서 그곳에 머물러 있던 예수교회 부설 영명학교 재학생 안기수(安期壽)와 졸업생인 신의득(申義得)에게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며, 공주에는 영명학교 외에도 농업학교와 보통학교가 있는데도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잠잠히 있는 것은 비겁한 것 아니냐면서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박장래는 학생들에게 「독립가」를 가르치고 가사를 베끼게 하였다. 박장래의 활동을 알아챈 일경은 박장래를 체포해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하고 옥고를 치르게 했다. 하지만 박장래의 영향으로 김수철 등은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40년 4월 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박장래의 충혼을 기려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