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994
한자 烈女全州李氏旌閭
영어공식명칭 Monument for Virtuous Woman Jeonju-Issi(Yeollyeo Jeonju-Issi Jeongnyeo)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 산47-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여송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59년연표보기 - 열녀 전주이씨 정려 건립
현 소재지 열녀 전주이씨 정려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 산 47-1 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홑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에 있는 열녀 전주이씨의 조선 후기 정려.

[개설]

열녀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이명순(李命純)의 딸이며 진주강씨 강이덕(姜履德)의 부인이다. 전주이씨는 강이덕에게 시집와 시부모님과 남편을 정성껏 섬겼다. 그러던 중 남편 강이덕이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이씨 부인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씨는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며 따라 죽고자 했으나 유복자와 늙은 부모를 두고 자결할 수 없어, 남편 강이덕의 묘 앞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오로지 아들을 기르고 부모님을 봉양하는 데 힘을 다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길에서 만난 낯선 남자가 같이 살자며 이씨의 손을 잡아 끌었는데, 이를 꾸짖어 뿌리치고는 집으로 돌아와 자귀로 자신의 손목을 자르고 이내 자결하였다. 이러한 효행과 열행이 알려져서 아산 출신의 대학자인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 선생이 표창을 요청하는 글을 지어 올렸고, 마침내 1859년(철종 10)에 효열(孝烈)로 인하여 전주이씨에게 정려가 내려졌다.

[위치]

열녀 전주이씨 정려아산시 인주면 도흥리에 있다. 지방도 623호선[현대로]에서 북쪽의 도흥2리 섬말로 들어가며 약 100m 지점의 왼쪽 산자락에 열녀 전주이씨 정려가 있다. 바로 옆에 효자 강이기 정려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형태]

열녀 전주이씨 정려의 정려각은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의 규모로, 자연석을 두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벽면은 전면은 홍살을 설치했고 하방 아래에 벽을 만들었으며, 양 측면은 중방 이상에 홍살이 둘러져 있고 아래는 벽이며, 후면은 전체에 벽을 두었다.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올렸고 좌우 측면에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목재 부분은 붉은 단청이 이루어졌다. 정려 내부에는 명정 현판이 걸려 있으며, ‘열녀 학생강이덕처 유인전주이씨지문 상지십년기미삼월십육일 명정려(烈女學生姜履德妻孺人全州李氏之門上之十年己未三月十六日 命旌閭)’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열녀 전주이씨 정려진주강씨 세거지 중 한 곳인 도흥2리 섬말 입구에 효자 강이기 정려와 나란히 세워져 있어서 조선 후기 여성들과 사회의 사상을 아산 지역의 마을에서도 강하게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5.13 내용 수정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의 봉건적 사상과 사회 질서가 → 조선 후기 여성들과 사회의 사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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