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90
한자 韓慶錫
영어공식명칭 Han Gyeongse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화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병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한경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한경석 조선학생혁명당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한경석 조선학생전위동맹 조직부장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한경석 석방
몰년 시기/일시 1951년연표보기 - 한경석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8년연표보기 - 한경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화리 373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조선학생전위동맹 조직부장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화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개설]

한경석(韓慶錫)[1909~1951]은 1927년 조선학생혁명당에 가입하였다. 조선학생혁명당은 1929년에 조선학생전위동맹으로 개칭되었고, 한경석은 조직부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조선학생전위동맹은 중앙부원회를 개최하여 독서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한경석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 동조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 등에서 수형 생활 후 1935년에 석방되었다.

[활동 사항]

한경석은 1927년 서울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고학당(苦學堂)[교장 이준렬] 학생 정관진의 권유로 조선학생혁명당에 가입하였다. 1929년 3월 조선학생혁명당을 조선학생전위동맹으로 개칭하고, 책임비서에 김태래, 조직부장에 한경석, 선전부장에 김순희 등을 선임하였다. 이들은 모두 조선학생과학연구회의 회원이었다. 같은 해 5월 관훈동 한경석의 집에서 중앙부원회를 개최하고 각자의 재학 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11월 봉익동 김순희의 집에서 열린 제5회 중앙부원회에서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하여 경성의 조선인 학생들을 선동하기 위한 격문을 인쇄하여 살포할 것을 결의하였다.

한경석을 비롯한 조선학생전위동맹은 1929년 12월 「만천하 학생 제군에 격함」 등의 격문을 작성, 인쇄하여 서울 시내 각 학교에 살포하는 등 광주학생운동의 동조 시위에 참여했다. 한경석은 일제에 체포되어 1931년 5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전형무소로 이감 중 조선민족독립만세 등을 소리 높여 외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이 추가되어 1935년 5월 1일 출옥하였다. 1951년 3월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한경석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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