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79
한자 朴貞陽
영어공식명칭 Bak Jeongya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병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5년 1월 12일연표보기 - 박정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박정양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35년 4월연표보기 - 박정양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박정양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거주|이주지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 89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독립운동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개설]

박정양은 1895년 1월 12일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현 배방읍 장재리]에서 태어났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대한통의부 국내 지부에서 활동하면서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 중 일제에 체포된 후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35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만주에 설치된 대한통의부에서는 외무위원장인 현익철이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 특파원을 파견하는 한편 국내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 지부를 결성하고 활동하였다. 이 가운데 대한통의부 경성지부에서는 홍경식, 이병욱 등을 영입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통의부는 대한통군부가 확대 개편된 것이다. 이들은 1922년 8월 이른바 ‘8단 9회’의 대표자 71명이 만주 환인현 마권자에 모여 남만한족통일회를 열면서 결성되었다. 대한통의부에서는 총장인 김동삼을 중심으로 민사, 군사, 재무, 실업 등 9개 부서를 설치하고 행정과 군대 조직 등 군정부의 형태를 갖추었다. 또한 5개 중대의 무장 부대를 편성하여 실질적인 무장투쟁도 전개하였다.

박정양은 대한통의부에서 파견된 국내 특파원과 연결하여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통의부로 넘겨주는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4년 박정양은 서울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제에 발각된 후 체포되었다. 일제로부터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35년 4월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박정양의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하여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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