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38
한자 成樂賢
영어공식명칭 Seong Nakhyeon
이칭/별칭 희성(希聖),죽사(竹似)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최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8년연표보기 - 성낙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4년 - 성낙현 식년문과에 생원 2등으로 입격
활동 시기/일시 1901년 - 성낙현 성균관박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6년 3월~8월 - 성낙현 경리원 문부이정위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성낙현 제실 회계심사위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성낙현 대동학회 회원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09년 6월 - 성낙현 규칙조사위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11년 7월 - 성낙현 문예구락부 간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2년~1935년 - 성낙현 경학원 충청남도 강사에 임명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2년 11월 - 공주군 향교에서 조선총독 포유문 도내 전포
활동 시기/일시 1913년 10월 - 성낙현 충청남도 관할구역을 순회하면서 조선총독 찬양 및 식민통치 순응을 강조함
활동 시기/일시 1915년 11월 - 성낙현 다이쇼 천황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15년 12월 - 성낙현 『경학원잡지』 12월호에 다이쇼 천황 즉위 축하 「즉위대례식헌송문」 게재
활동 시기/일시 1916년 2월 - 성낙현 『경학원잡지』 2월호에 쇼와 태자 즉위 축하 글 게재
활동 시기/일시 1928년 11월 - 성낙현 쇼와 천황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29년 12월 - 성낙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재임 축하시를 지음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2월 - 성낙현 명륜학원 평의원을 겸함, 『경학원잡지』 12월호에 불이농장 견학 후 식민지 농정 찬양 시를 기고함
몰년 시기/일시 1935년 9월 2일연표보기 - 성낙현 사망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지도보기
성격 유생
성별
본관 창녕
대표 경력 경학원 충청남도 강사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친일 행적을 벌인 유생.

[개설]

성낙현(成樂賢)[1868~1935]은 경학원(經學院) 충청남도 강사(講士)로 1912년부터 1935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가계]

성낙현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희성(希聖), 호는 죽사(竹似)이다. 1868년(고종 5) 아산 신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갑영(成甲永)이다.

[활동 사항]

성낙현은 1894년 식년시(式年試)에서 생원 2등으로 입격(入格)하였다. 1901년(고종 38)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에 임명되었고, 1906년(고종 43) 3월부터 8월까지 경리원(經理院) 문부이정위원(文簿釐整委員)을 지냈다. 1907년(고종 44) 3월 제실(帝室) 회계심사위원에 임명되었다.

1907년 7월 고종 강제 퇴위 이후 유교계를 친일세력으로 결집시키기 위해 이완용(李完用) 등 거물급 친일 인물 중심으로 설립된 대동학회(大東學會)에 1908년(순종 2)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09년(순종 3) 6월 규칙조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이어 1911년 7월 문예구락부(文藝俱樂部)에서 간사를 맡았는데, 문예구락부는 한문 교육, 한문 폐지 반대를 내세우며 박영효(朴泳孝), 김가진(金嘉鎭)이 총재와 부총재로 발기한 단체로 대부분 친일 인사로 구성되었다.

1912년 2월부터 조선총독부 직속 기구인 경학원 충청남도 강사를 하였다. 경학원은 일제강점기 때의 유교 교육기관이다. 본래 1887년(고종 24) 성균관(成均館)에서 개칭된 이름이었으나, 1894년(고종 31) 폐지되었다. 조선총독부가 1911년 6월 15일 조선총독부령 제73호 「경학원규정」에 따라 남아 있던 성균관을 1894년 폐지되었던 경학원의 이름을 사용하여 개칭하였다. 조선총독부의 교화 기관 역할을 하였으며, 전국 13도에 강사를 두었다. 경학원, 경학원 소속 향교와 부설기관은 유림 친일화에 앞장섰으며 황도유학(皇道儒學)을 표방하고, 천장절(天長節)[일본 천황의 생일]의 축하식 등을 벌이며 조선총독부 보조금으로 운영되었다. 1912년 11월 공주군 향교에서 조선총독의 포유문(布諭文)을 도내에 전포하였다. 이에 성낙현은 1913년 10월 예산, 면천, 당진, 서산, 덕산, 홍주 등 관할구역을 순회하며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총독을 찬양하고 조선인들이 식민통치에 순응할 것을 강조하였다.

1915년 11월 다이쇼[大正] 천황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大禮記念章), 1928년 11월 쇼와[昭和] 천황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을 각각 받았다. 1930년 12월부터 경학원 부설로 설립된 또 다른 유림 친일 단체인 명륜학원(明倫學院) 평의원을 겸임하였다.

[저술 및 작품]

성낙현은 1915년 12월호 『경학원잡지(經學院雜誌)』에 다이쇼 천황의 즉위를 축하하는 「즉위대례식헌송문(卽位大禮式獻頌文)」을 저술하였다. 「즉위대례식헌송문(卽位大禮式獻頌文)」에서 천황을 "가만히 있어도 다스려지는 도가 있는 임금이십니다. 이에 문예롭고, 무예로우며, 거룩하고 신령하여, 마침 삼천년 만에 다시 회복되는 운세를 당한"이라고 칭송하며, "백성들 중 현명한 자들은 모두 황제의 신하이기에… 모두들 송축드려야 한다."고 찬양하였다. 1916년 2월호에는 쇼와 태자 즉위를 축하하며 "태자께서 슬기롭고 효성 있으매/ 팔굉(八紘)[온 세계]에서 모두 서로 기뻐하거니/ 우리나라 경사스러운 복이로구나."라는 글을 실었다.

1928년 조선총독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의 진해 순시를 기념해 일제 식민통치를 찬양하는 시를 지었으며, 1929년 12월에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재임을 축하하는 시를 지었다. 1930년 12월호 『경학원잡지』에 대표적인 식민지 농업 수탈 현장인 불이농장(不二農場)을 견학하고 식민지 농정을 찬양하는 시를 기고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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