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13
한자 開運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
영어공식명칭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of Gaeunsa Templ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용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3세기[추정] -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충청남도 아산 지역 소재 축봉사에서 제작
보수|복원 시기/일시 1274년|1322년 -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개금 중수
이전 시기/일시 임진왜란 이후[추정] -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축봉사 폐사와 함께 개운사로 이안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11월 3일 - 개운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일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1호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0년 4월 23일 - 개운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일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1호 해제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4월 23일연표보기 -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발원문 보물 제164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4월 23일연표보기 -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 전적 보물 제1650호 지정
현 소장처 개운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개운사길 73[안암동5가 산4-11]
현 소장처 불교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수송동 38-2]
원소재지 축봉사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지도보기 또는 영인면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목재
크기(높이) 115.8㎝[높이]|92㎝[무릎 너비]
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 개운사
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개운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 불교중앙박물관발원문 및 복장 전적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발원문|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 전적]

[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개운사에 있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축봉사에서 봉안되었던 고려 후기의 불상.

[개설]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開運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은 13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2009년 11월 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1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 4월 23일 보물 제1649호[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발원문(-開運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發願文)], 보물 제1650호[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 전적(-開運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腹藏典籍)]로 일괄 지정되면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에서 해제되었다.

[형태]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115.8㎝, 무릎 너비는 92㎝이다. 전체적으로 원만한 비례를 유지하고 있고 보존 상태도 좋은 편이다. 측면에서 보면 머리를 앞으로 약간 숙인 형태로 구부정하게 보인다. 얼굴은 둥근 편이며, 신체 비례상 다소 크게 조성되었다.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와 머리 부분과의 경계가 뚜렷하지는 않으며, 정상계주(頂上髻珠) 없이 중앙계주(中央髻珠)만 표현되었다. 계주란 상투 가운데 있는 밝은 구슬을 말하며, 정상계주는 육계 위에 장식한 것이고, 중앙계주는 머리와 육계 사이에 장식한 것이다.

법의(法衣)의 착의(着衣) 형식은 편삼(偏衫)을 입고 그 위에 편단우견(偏袒右肩)[왼쪽 어깨에 웃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냄] 형식의 대의(大衣)를 입고 있다. 옷 주름은 촘촘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접혀진 오른어깨의 대의 자락, 왼어깨 위의 촘촘한 옷 주름 등은 고려 후기의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양손은 가슴 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결(結)한 아미타불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설법인이란 중생에게 법을 설하고 있음을 알리는 수인(手印)[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으로 오른팔 혹은 양팔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든다.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형태로 오른다리가 왼무릎 위에 올라간 형태이며, 대의에서 내려온 옷자락이 오른발 끝을 덮고 있다. 군의(裙衣)[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는 양다리 사이에 부채꼴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접혀 있다.

[특징]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상의 내부에서 단일 불복장(佛腹藏)으로는 최대인 전적류 28점과 문서류 13점이 발견되었다. 불교 전적 중에는 옛 경전의 목판본(木板本) 15점, 필사본(筆寫本) 7점이 9~13세기 사이에 판각·인출 및 필사된 것이며, 그중 20점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전적이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다.

복장물 중에는 불상을 중수 개금(改金)[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하면서 넣은 발원문(發願文) 3점이 있다. 1274년(고려 원종 15)의 발원문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동심사(東深寺)에 머물던 중간대사(中幹大師)가 옛 절의 훼손된 무량수불상(無量壽佛像)을 개금한 내용이다. 불상의 조성 연대는 개금된 시기보다 이를 것이기 때문에 13세기 전반임을 알 수 있으며, 13세기의 고려 목조불상 중에서는 보물 제1619호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瑞山開心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과 더불어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322년(고려 충숙왕 9)의 발원문은 최춘(崔椿)의 복장 조성 발원문과 승려 천정(天正)·혜흥(惠興)이 아주(牙州) 축봉사[鷲峯寺]에서 아미타 불상을 개금하면서 작성한 발원문 각 1점이다. 천정·혜흥의 발원문을 통해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상이 아산 축봉사에 봉안되었던 불상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취(鷲)’ 자는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예를 들어 깨달음을 뜻하는 보리[菩提]는 한자 사전식으로 ‘보제’라고 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취(鷲) 자가 원래 ‘축’으로 표기되었다는 근거는 1463년(조선 세조 3)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된 『법화경언해본(法華經諺解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아산현(牙山縣) 기록에는 발원문의 ‘축봉사’와 동일한 음을 가진 축봉사(縮鳳寺)가 동림산에 있다고 하여 동일한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림산영인산 동쪽 상투봉과 그 일대의 옛 이름으로 추정되며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영인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축봉사는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나 기타 읍지(邑誌) 등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임진왜란 시기에 폐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불상이 어떠한 경위로 어느 시점에 서울 개운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개운사 연혁에 1885년(고종 22) 덕해화상(德海和尙)이 아산으로부터 1712년(숙종 38)에 제작된 범종 1구(軀)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의의와 평가]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성 당시부터 350년 이상의 오랜 기간 동안 아산 축봉사에 봉안되고 중수가 이루어졌던 불상이다.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중수 발원문을 통해 13세기에 제작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인 조각 양식이나 수법 등 조형성이 뛰어나서 그 시기의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불상이다. 복장물로 발견된 다량의 전적과 발원문 등의 문서 역시 우리나라 불교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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