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리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71
한자 長在里遺蹟
영어공식명칭 Remains in Jangjae-ri
이칭/별칭 아산 장재리유적,대추리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로 27[장재리 1884]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이판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10월 30일~2007년 9월 7일 - 충청문화재연구원 장재리유적 발굴 조사
현 소재지 장재리유적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로 27 지도보기
성격 복합 유적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위치]

장재리유적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의 중심 마을이었던 대추리마을 일원에 있으며 현재는 아파트단지로 개발되었다. 월봉산[133m]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천안천 주변에서 잦아드는 지형이며, 능선 말단의 서사면에 유적이 있다. 국도 21호선 온천대로의 아산시 들머리 북쪽이며, 장재지하차도에서 고속철대로로 접어들어 300m쯤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된다.

[형태]

장재리유적 중 대추리유적은 지형에 따라 A구역과 B구역으로 나뉜다. 남쪽에 있는 A구역은 능선 말단의 완만한 정상부 일원과 서쪽의 경사 지형을 이루고, 작은 골짜기를 두고 북쪽에 있는 B구역은 능선 및 남서쪽으로 향한 경사 지형을 이룬다. 그중 A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 및 초기 철기시대 주거지 17기, 고려시대 건물지 1동 등이 조사되었다. B구역에서는 고려시대 건물지 8동, 조선시대 널무덤 75기 등이 조사되었다. 초기 철기시대의 주거지는 능선 정상 주변의 완만한 지형에 밀집하여 12기가 있으며,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중첩 없이 분포한다. 주거지 평면 형태는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이고, 중앙에서 약간 치우쳐 화덕자리[노지(爐址)]가 확인된다.

[출토 유물]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는 크게 아가리 부분에 원형의 점토 띠를 덧댄 토기[원형점토대토기(圓形粘土帶土器)], 굽다리접시 모양 토기[두형토기(豆形土器)], 토제(土製) 손잡이[파수(把手)], 가락바퀴[방추차(紡錘車)] 등의 토기류와 자귀날도끼[편인석부(片刃石斧)], 홈자귀[유구석부(有溝石斧)], 삼각형 돌칼[삼각형석도(三角形石刀)] 등의 석기류가 있다. 아가리 부분에 원형의 점토 띠를 덧댄 토기는 입술 단면이 원형이고, 손잡이는 조합식 쇠뿔손잡이[우각형파수(牛角形把手)]와 고리 모양의 손잡이[환상파수(環狀把手)]가 있다. 굽다리접시 모양 토기는 굽다리 부분이 남아 있는데, 나팔 형태로 벌어지는 높은 굽 형태[장각형(長脚形)]로 추정된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시의 아산배방 택지개발 1단계 사업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가 2006년 10월 30일부터 2007년 9월 7일까지 충청문화재연구원 주관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청동기시대 및 초기 철기시대 주거지, 고려시대 건물지, 조선시대 널무덤[토광묘(土壙墓)] 등이 확인되었다. 2010년에 장재마을 휴먼시아아파트단지가 준공되었고, 주변도 택지개발이 완료되어 장재리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유적 자료는 발굴 조사 보고서 간행을 통해 기록·보전하였다.

[의의와 평가]

장재리유적 중 대추리유적의 초기 철기시대 주거지는 청동기시대의 평면 정사각형 및 원형 주거지와 중첩되는 모습 없이 동일 장소에 밀집되어 있다. 한국형 좁은놋단검[세형동검(細形銅劍)]의 등장과 함께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전환되는 시기 전후의 상황을 보여 주는 유적으로 이해된다. 이후 인접한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이나 대전 괴정동유적에서와 같이 한국형 좁은놋단검, 방패 모양의 청동기[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대쪽 모양의 청동기[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 등을 수반하는 초기 철기시대의 청동기 문화가 유행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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