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평리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70
한자 宮坪里遺蹟
영어공식명칭 Remains in Gungpyeong-ri
이칭/별칭 아산 궁평리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궁평리 산11-1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이판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궁평리유적 -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궁평리 산11-1 지도보기
성격 고분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궁평리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 유적.

[위치]

궁평리유적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궁평리삽교천과 바로 맞닿아 있는 낮은 구릉성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선장면 행정복지센터 동쪽 선장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아산만로를 따라 가다 1.7㎞ 지점 삼거리의 왼쪽 삽교천로로 접어들어 궁평2리 마을회관과 락앤락 아산공장을 지나 1.4㎞ 정도 지점에서 왼쪽 농로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야트막한 구릉지가 궁평리유적이 있는 곳이다. 유적 서쪽으로는 삽교천 본류를 사이에 두고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의 드넓은 평야지대가 있고, 북쪽으로는 삽교천곡교천 주변으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동쪽으로는 곡교천에 합류하는 학성천 주변으로 충적지대가 있다. 넓게 볼 때 유적이 있는 곳은 인접한 아산시의 남쪽에서부터 이어져 온 삼봉산[132.5m]에서 북서쪽으로 산줄기가 뻗어 내려온 곳으로 삽교천학성천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남북으로 길고 낮은 구릉 지형을 이룬다.

[형태]

궁평리유적의 일괄 유물(一括遺物)은 1982년 9월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궁평리 산 11-1에서 묘 이장 중에 발견되었다. 선장면 돈포리 200번지에 살았던 주민에 의해 신고되어 출토된 유물은 1983년 2월 5일 국가에 귀속되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지조사를 했으나 정확한 위치나 유구 형태 등은 확인할 수 없었다.

[출토 유물]

궁평리유적에서는 좁은놋단검[세형동검(細形銅劍)], 청동꺾창[동과(銅戈)], 어깨 달린 구리도끼[유견동부(有肩銅斧)] 조각, 잔무늬거울[다뉴정문경(多紐精文鏡)] 등이 출토되었다. 좁은놋단검은 등날이 기부(基部)까지 발달해 있으며 결입부(抉入部)가 있다. 칼끝 부분인 봉부(鋒部)가 짧고 칼날의 폭이 좁으며 길이는 31㎝로 긴 편이다. 청동꺾창은 전체적으로 날씬한 모습이지만 두께가 두꺼워 묵직한 감이 있다. 등날이 있고 창끝이 짧은 편인데, 피홈[혈구(血溝), 칼로 찌르거나 베어낼 때 피가 흐르도록 판 홈] 아래쪽에 창대에 결합하기 위한 구멍이 2개 있다. 어깨 달린 구리도끼는 몸체의 위와 아래가 결실되었다. 단면상 은회색이 돌아 주석이 다량 섞인 것으로 판단되고, 측면에 거푸집[용범(鎔范)] 흔적이 있다. 몸체 가로 단면은 볼록렌즈 모습이다. 잔무늬거울은 일부 결실되었지만 직경 10㎝ 미만의 소형이다. 거울 면이 심하게 들어가 오목거울처럼 되어 있다. 가장자리[주연(周緣)]의 단면은 반원형에 가깝고 꼭지는 두 개가 나란히 있다. 뒷면에 새긴 문양은 내구(內區)·중구(中區)·외구(外區)로 나뉜다. 삼각형 모양의 톱니 무늬[삼각거치문(三角鋸齒文)], 직선이 가로세로 대각선 방향으로 채워진 무늬[집선문(集線文)], 겹고리무늬[동심원문(同心圓文)] 등을 배치하였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궁평리유적 일대는 2019년 현재 남아 있는 몇 기의 근현대 무덤 외에 주변은 초목이 우거진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궁평리유적에서 출토된 일괄 유물은 비록 출토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국식 좁은놋단검 문화의 대표적인 유물로서 출토 무덤의 형태는 인근 지역인 신창 남성리 돌널무덤이나 대전 괴정동유적과 같은 돌널무덤 형태를 잇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늦은 시기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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