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02
한자 忠武公家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제장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15년연표보기 - 『충무공가승』 간행
소장처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 1 사서함 88-1호
성격 문헌
저자 이순신
편자 이홍의
간행자 이봉상
권책 6권 2책
규격 20㎝[가로]|31㎝[세로]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이순신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던 글과 관련 자료를 후손들이 모아 편집하여 간행한 책.

[개설]

가승(家乘)이란 한 집안의 족보나 문집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주요 인물이 사망하였을 때 당사자가 남긴 각종 저작물 등을 모아 책으로 엮어 추모하는 것이 관례였다. 문집에는 평소 썼던 글과 편지, 생애를 설명한 전기(傳記)인 행장(行狀), 인물의 연대기인 연보(年譜), 임금으로부터 받은 임명장이나 명령서 등이 들어갔다. 이순신(李舜臣) 집안에서도 이순신을 추모하기 위해 『충무공가승(忠武公家乘)』을 만들었다. 『충무공가승』이순신의 4세손인 이홍의(李弘毅)가 주도하여 편찬한 것으로, 조카 이봉상(李鳳祥)이 전라좌수사에 임명된 것을 계기로 간행에 들어가 1715년(숙종 41) 간행이 완료되었다.

[저자]

이순신의 4세손 이홍의에 의하여 편찬되었으며, 이홍의의 조카 이봉상이 간행한 책이다.

[편찬/간행 경위]

『충무공가승』은 조선 16대 왕 인조 말 이순신에게 시호(諡號)가 내려진 것을 계기로 신도비 건립이 추진된 것에서 출발하였다. 여기에 이순신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후손에 대한 녹용(錄用)[인재 채용]이 이루어졌다. 『충무공가승』 편찬의 주역인 이홍의는 이순신의 봉사손(奉祀孫)[조상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자손]으로서 관직에 임용되었고, 조카인 이봉상은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 결국 『충무공가승』 편찬을 통해 후손들은 이순신의 후예로서 명예와 더불어 관직 발탁과 같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순신의 사적(史籍)은 그러한 후손의 지분을 뒷받침해주는 것이었으므로 후손들은 사적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충무공가승』은 그 산물이었다.

[형태/서지]

문서 형태로 단행본이며 내용은 총 6권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충무공가승』은 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무공가승』의 첫머리에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이여(李畬)가 쓴 서문과 후일 영의정을 역임한 이이명(李頤命)의 발문이 실려 있다.

제1권에는 이순신이 남긴 각종 글이 실려 있다. 내용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 명나라 선유도사(宣諭都司) 담종인(譚宗仁), 명나라 수군 도독(都督) 진린(陳璘) 등에게 보낸 편지 3통이 제일 앞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부하인 정운(鄭運) 장군을 위해 지은 제문, 이순신 장군의 두 칼에 새겨진 다짐인 검명(劍銘)[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도 포함되어 있다. 친구이자 충청수사(忠淸水使)였던 선거이(宣居怡)와 이별할 때 지은 시 1수, 「한산도 야음(閑山島夜吟)」 1수 등 총 4수의 시도 실려 있다.

제2권에는 이순신의 가문을 소개한 세계(世系), 승지 최유해(崔有海)가 지은 이순신의 행장, ‘충무공’ 시호를 주게 된 연유를 기록한 시장(諡狀)이 게재되어 있다. 이어서 이순신의 묘소 앞에 세워진 신도비명 음기(陰記)[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이순신 신위를 모신 최초의 사액(賜額)[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사당인 충민사의 사적을 기록한 충민사기(忠愍祠記), 전라좌수영대첩비명(全羅左水營大捷碑銘), 노량묘비명(露梁墓碑銘), 통제영충렬사비음기(統制營忠烈祠碑陰記), 명량대첩비명(鳴梁大捷碑銘), 전라좌수영동령소갈(全羅左水營東嶺小碣) 등이 수록되어 있다. 2권은 이처럼 주로 이순신과 관련된 제3자의 기록이나 사당·비문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제3권에는 조카 이분(李芬)이 지은 전기인 행록이 실려 있다.

제4권은 교명(敎命) 편으로 이순신이 임금으로부터 받은 임명장이나 명령서를 수록하였다. 수정헌대부교서(授正憲大夫敎書), 견선전관노군교서(遣宣傳官勞軍敎書), 수삼도통제사교서(水三道統制使敎書), 견병조좌랑노군호궤교서(遣兵曹佐郞勞軍犒饋敎書), 기복수삼도통제사교서(起復授三道統制使敎書), 책선무원훈교서(策宣武元勳敎書) 등과 제문 5편이 실려 있다.

제5권은 부록으로 임진왜란 당시 정탁(鄭琢)이 이순신에 대한 사형을 반대하면서 쓴 신구차(伸救箚)[이순신을 살려 나라를 구하자는 상소문]와 중조수군도독진린제문(中朝水軍都督陳璘祭文), 감사민유중제묘문(監司閔維重祭墓文), 현충사봉안시제문(顯忠祠奉安時祭文)과 현충사상량문(顯忠祠上樑文)이 실려 있다.

제6권도 부록으로 이순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와 유성룡(柳成龍)과 차천로(車天輅)의 이순신 애도시를 비롯한 이순신 죽음을 애도하는 글들이 단편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기타 이순신을 애도하고 칭송하는 간단한 언급이 다수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정조 때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앞서 이순신이 쓴 글과 기록을 처음으로 집대성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아울러 『충무공가승』을 바탕으로 『이충무공전서』가 집필되었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2.07 오류 수정 [개설], [저자] 오류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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